블로그 주소 변경

May 24th, 2008

어제가 회사에서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생각하고 계획한 일인데도..
왜 이렇게 낯설고 어색한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실감은 잘 나지 않습니다.

저는 이제 당분간 정리 모드로 들어가며
여기 아파트도 정리하고, 주변분들께 인사도 하고 그렇게 지낼 것 같습니다.

그 간의 글들은 이곳에 묻어두고, 이제 새로운 길로 첫 발을 떼었으니
블로그도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하려고 합니다.

    새 블로그: Flower of Hope

피드 구독하시던 분들은 변동없이 피드버너 주소 그대로 사용하시면 됩니다.

소망의 꽃

May 24th, 2008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설렌다.

작년에 2Rock로 가기 전부터, 또 그 곳에 머무는 열흘 동안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마음은 "소망"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그 땅에서 벌어지는 민족과 종파간의 갈등을 몰라서가 아니라, 날마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치열한 내전과 그들 마음의 깊은 불신과 상처를 몰라서가 아니라..

2Rock의 현실을 인정하라며 은근히 패전의 변명과 포기를 종용하는 자료를 읽을 때조차도 내가 만났던 그곳 사람들의 순수한 눈빛과 사랑을 떠 올리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망!, 다시 소망!을 외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현실감각 없는 것을 인정하라면 기꺼이 그럴테지만, 자꾸만 이런 소망과 사랑의 마음이 생기는 것은 이 소망이 내 능력이나 이 세상을 믿음에서 오지 않고, 그 땅을 사랑하시는 아버지를 믿는 믿음에서 오기 때문에 그러하다.

믿는 구석이 확실하니, 누가 뭐래도 그 땅은 소망의 땅.

그리고 나는 소망의 꽃을 피우러 그 땅으로 나간다.

아는 게 병

May 21st, 2008

정기검진을 꾸준히 하는 게 병을 키우지 않고 예방에도 좋은 줄 알겠는데..
검사를 안했으면 건강하려니 믿고 말 일을
괜히 검사를 해서 작은 수치 하나에 연연하게 된다.

Reference Range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이거 무슨 병 아냐?  >.<
(원래 급소심한 성격이다.)

작년 초에 혈액검사를 했는데 백혈구 수치가 Range 밖으로 떨어져서
4주 후에 재검하고 또 몇 달 지나 재검했는데 수치가 계속 낮은거다. 
이거 뭐야.. 백혈병도 아니고.. 재생불량성빈혈 뭐 그런거 아닌가?? ㅠ.,ㅜ
어느 쪽이래도 나랑은 너무 안 어울리는 거다.
의사도 수치가 더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젊고 건강하니까 별 문제 아닐거라 그랬는데..
나도 신경 끈다 하면서 괜히 조금만 빈혈이 있으면..
음.. 백혈구가 너무 적어서 그렇군.. 막 그러고..
아침에 일어나기 싫으면 백혈구가 적어서 피곤하다 그러고.. ^^;

올해 들어서는 검사를 안했는데 아무래도 외국 나가기 전에 한번 체크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 엊그제 병원을 갔다.
오늘 결과를 봤는데 백혈구 수는 정상 ^_^ (역시 오바였던 건가?ㅋ)
근데 이번엔 헤모글로빈이 낮다. orz

아무래도 신경 끄는게 좋을 것 같다.
담배 안하고 술 안하고 약 안하고 젊은데..
괜히 소심해져서 고민하고 스트레스 받다가 병 만들지 싶다.

걍 잘 먹고, 열심히 운동하고, 기쁘게 살면 될 일.
(그래도 백혈구수가 정상으로 돌아와서 안도의 한숨~ ^^)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May 21st, 2008

나실군이 사 준 Crocs~
꽃과 나비까지 달아주는 센스 ㅠ.,ㅜ

거마워~  2Rock에서 잘 신을게 ;-)

Blogged with the Flock Browser

가족

May 18th, 2008

평양 어디의 부잣집 막내딸로 태어난 울 할머니는 위안부 잡혀가지 않도록 열일곱에 혼인을 하고 스물 두엇에 이남으로 내려오셔서 일가를 개척하셨다.

지역 유지셨던 할머니의 친정 어른들은 사시는 터전을 버리고 월남 할 수 없으니..
너라도 내려가 살라며 배에 이것저것 실어 보내셨는데
도중에 풍랑을 만나 짐을 많이 버리고 겨우 내려 오셨다고 했다.
며칠 먼저 떠났던 이웃의 배는 파산하여 파편이 떠다니는데..
오히려 늦게 출발하여 살았다고 하셨다.

(그때 바다에 빠지지 않고 남은 물건 중에 오강(?)처럼 둥글납작한 도자기가 있는데 우리가 이민 올 때 엄마는 그 와중에 그걸 잊지 않고 챙겨 할머니를 감동시키셨다.)

집안의 막내로 귀염 받고 사신 할머니는..
집 떠나 멀리 학교가는 것도 엄마 보고 싶다고 울고 떼쓰셨다는데..   
그랬던 분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키우시며..
한국 전쟁을 몸으로 다겪고.. 생존을 위해.. 자식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억척스러운 삶을 사셨는지..
말씀을 듣다 보면.. 이게 소설도 아니고 대하드라마도 아니고, 그냥 울 할머니 얘기라는 것이 얼마나 당혹스러운지.. 잡히지도 보이지도 않는 그 격동의 시간들과 현재의 고리를 찾기는 얼마나 어색한지..

한국의 근대사는 순도 100%의 농축액 같다.
그리고 내 눈 앞에 계신 이 분이 바로 전설이고 증인이시다…

아빠가 어릴 때 할머니께 그러셨단다.

남들은 삼촌도 있고 이모도 있는데 왜 나는 아무도 없냐고..
명절이 되면 친척들 모이고 북적 거리는 다른 친구네 집이 부럽다고..

할머니의 트라우마는 가족이 흩어지는 것이었다.
이남의 유일한 피붙이인 남편과 자식들에 대한 할머니의 집착은 유별났다.
그래서 억척스럽게 돈을 버셨고, 군대 가는 아들들을 따라 다니며 뇌물도 쓰셨다. 최전방은 가지 않도록..
옳고 옳지 않은 것보다.. 할머니에겐 가족을 지키는게 더 소중했다.

집안에서 첫 손주인 내가 태어났을 때..
아빠는 할머니께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엄마, 우리 한나는 다 있어. 삼촌도 있고 고모도 있고 이모도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다 있어.”
“그래.. 한나는 정말 다 있구나..”

가족이 할머니와 아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난 몰랐고, 이해하지 못했다.
외가에는 엄마의 여섯 형제 외에도 촌수를 다 셀 수 없는 많은 친척이 있고, 친가로도 작은아빠, 삼촌, 고모까지 모두 가진 내가 아닌가.. 
그런 난 늘 집을 떠나고 싶어했다.
난 늘 가족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아빠가 그렇게 자식들을 곁에 두고 싶어 하셨구나.
그래서 아빠는 무리해서 방세칸을 고집하셨구나..
그래서 아빠는 내가 집에서 나갈 때 쓸쓸한 눈을 하셨구나..

난 오늘에서야 아빠의 마음을 더듬어보며 가슴이 먹먹하다.

난 지금 내가 옳은 길을 간다고 믿지만….
이런 날 섭섭해 하시는 할머니를 이해할 수 밖에 없다.

부모님이 계셨다면..
말리지는 않으셨겠지만 많이 걱정하셨으리라..

엄마..
아빠..

공이구원

May 17th, 2008

다음 주면 회사에서 준 핸드폰을 반납해야 하니까.. 새 연락처가 필요하고..

또 앞으로 거처가 바뀔 때마다 전화번호를 바꾸자니 여럿 번거롭게 할 것 같아서..
온라인 번호를 하나 샀다.

미국에 있는 동안은 핸드폰으로 forward 시켜 쓰면 되고..
한국이나 선교지에 있을 때는 skype으로 통화하면 된다.
전기가 나가거나 인터넷 연결이 안되는 곳이라도 Voice Mail 있으니까 나중에 메세지 확인하면 되고..

무엇보다.. 미국에 있는 식구들이 로컬 번호로 부담없이 전화할 수 있고
나도 미국, 캐나다에 있는 사람들과 무제한 통화할 수 있으니 좋다.

내 고유 번호로.. 또 앞으로 쭈-욱 쓸 요량이다 보니 번호 정하기가 어려웠는데..

1004
1010235
8282
7942

저 옛날 삐삐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별별 번호를 다 대봤다.
생일, 출생년도, 좋아하는 번호도 물론 다 넣어봤다.

앞자리까지 정하기는 쉽지 않고.. 뒷자리도 좋은 번호는 거의 taken이었는데
동생이랑 짱구 굴려 보다 생각해 낸 게 공이구원 & 공이삼오
먼저 번호는 2라크 구원 그런 뜻이고 뒤에 번호는 2라크를 사모한다 그런 얘기다. ^^
결국엔 앞에 번호가 더 맘에 들어서 그렇게 번호를 정했다.
뿌듯 ^_____^

** 전화번호가 아래와 같이 바뀝니다.
육일칠 구삼사 공이구원

확실한 선택

May 15th, 2008

난 의심이 많은 아이였다.

초딩 때 반공도서를 읽고 독후감을 쓰는데..
그땐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는 것도 아니고, 외국을 나가 본 것도 아니고..
걍 쪼만한 동네가 세상의 전부이던 그런 시절이었는데..

공산당이 얼마나 나쁜지, 북한 어린이들이 어떻게 세뇌 교육을 받고 사는지, 그곳은 얼마나 폐쇄된 사회인지.. 그런 얘길 들을 때마다..
사실 정말 세뇌 교육을 받는 건 남한 어린이들이 아닐까..
사실은 북한이 열라 잘 살고.. 남한이 못사는 건 아닐까..
북한은 댑따 자유롭고 남한 사람들이 억압하고 갇혀 지내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중에 커서 보니.. 또 외국도 나가 보니..
북한이 정말 그렇다는 걸 여러 방법으로 알게 되었지만..
암튼.. 그 어린 시절에도 난 누가 일러주는 걸 곧이 곧대로 믿지 못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집 다음으로 익숙한 곳이 교회였다.
엄마 손에 이끌려 새벽기도도 다니고 주일학교, 여름성경학교 빠지지 않고 다녔다.
교회가 그냥 놀이터고, 집에 오는 손님도 거의 교회분들이고..
그 시골 동네에서 엄마랑 교횔 가는 건 거의 특권이었다.
내 친구 부모님 중엔 교회 다니시는 분이 없고 친구들은 저 혼자 주일학교를 오는데..
나는 교횔 가면 울 엄마가 주일학교 교사고, 집사님이고.. 어른들도 다 귀여워해 주시니까..
나중에야 알았다.. 거기선 내가 주류였고 다른 아이들은 비주류였던 걸..
내 친구들은 날 은근히 부러워했고 더러는 소외감도 느꼈다는 걸..

난 그렇게 너무 당연하게 교회를 다녔는데..
그랬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세뇌를 당했을 것만 같았다.
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으니까 교회를 다니지만, 만약 불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절에 다녔을 것 아닌가..
내가 살아온 환경을 배제한 후에도 예수님을 객관적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인지 난 오래 고민했다.
게다가 예수님 밖에 다른 구원의 길이 없다는데야..
세상에 그럼 억울한 사람이 너무 많지 않은가..
걍 불교 믿는 사람들은 극락 가고, 기독교 믿는 사람은 천국 가고.. 그럼 너무 좋을 것 같았다.

선교사 지원서를 작성하며 신앙 간증문을 쓰는데..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나에겐 극적인 회심의 사건이 없다.
중고등학교 시절 난 따지고 대들기 선수였다.
의심은 떨쳐지질 않고 믿음도 없으면서 믿는 척하는 것은 너무 익숙했고 그렇다고 모든 걸 부정하기는 찜찜했다. 
믿음이 다 뻥이면.. 그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뻥을 친다는 건가..  그것도 받아들이기 어렵고..

신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만큼, 신을 부정하기도 어려웠다.
뭔가 있기는 있다.  근데.. 그게 뭔가?
이 세계를 지배하는 어떤 원리와 질서가 있는 것 같다. 
이 모든 걸 우연의 일치로 보는 건 너무 엄청난 믿음(?)을 요구한다.
창조주가 있다면 그 창조주와 우리는 무슨 상관이 있나?
창조주는 인간의 삶에 어떻게 개입하고 무슨 영향을 주나?
.. 내내 그런 고민과 질문을 했던 것 같다.

근데 나 어떻게 믿었지????

성경도 안믿어져서 막 괴로워하고.. (너무 기적이 많아..)
아무래도 이대로 죽었다가는 천국이 있다 한들 믿음이 없어서 천국도 못 갈 것 같았는데..

난 은혜로 믿었다. 
어느 순간 믿어져서 믿었다.

중고등학교 때 차비를 아끼려고 많이 걸어 다녔다.
기본 한시간씩 걸었고 마을버스 안 다니는 새벽에 나갈 땐 삼사십분을 더 걸었다.
그때 난 공상하고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뭐 심심하니까 계속 하나님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믿어지든 믿어지지 않든.. 남들이 다 있다고 하니까.. 있다고 치고..
혹시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있었으면 좋겠고..

그러다 자연스럽게 고민을 얘기하고.. 기도하고..
난 어릴 때부터 왜 그렇게 마음이 곤고했나(?) 모르겠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는 줄을 그때 알았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상관하신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토록 크고 광대한 분이 그렇게까지 섬세하신 것에 감동하였다.
내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이분과 함께 가는 구나…

내 믿음은 조금씩 자랐고, 어려서부터 배웠던 성경이 살아있는 말씀이 되었다.

모든 걸 낱낱이 증명한 뒤에야 믿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인간이 초월자를 증명하겠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르겠거니와 전능자가 있다면 기적이야 그에겐 너무 사소한 일 아닌가?
그때부터 성경.. 막 다 이해되고..
인간이 설명하고 증명할 수 있는 일만 한다면 그게 무슨 신인가?

난 무엇보다 성경을 – 구약과 신약 통털어 – 관통하여 역사를 통해 진행되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언약과 성취(오실 주님과 다시 오실 주님),
십자가로 보여 주신 사랑의 능력, 율법이 아닌 은혜로 주시는 구원,
잘난 민족, 선택된 민족이 아닌 모든 민족을 부르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그렇게 벅차고 감동스러울 수가 없었다.

성부 하나님도 모든 민족 (창세기 12장 1-3절),
성자 예수님도 모든 민족 (마태 28장 19절),
오순절 성령님도 다시 모든 민족(행 2장 8절)..

하나님의 소원은 처음부터 언제나 모든 민족의 구원이고 모든 민족의 회복이었다.

어디 한두군데 숨어있는 말씀이라야 피하고 숨지..
난 확실한 게 아니면 잘 믿질 못한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믿는데 그렇다면 이보다 확실한 게 무어냐.
좋다. 모든 민족.

그렇다면.. 나는 이 땅의, 이 많은 민족 중 어느 민족을 섬길 것인가?

이미 복음을 받은 민족들.. 물론 그 곳에도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러나 이미 기라성 같은 사역자들이 있는 그 곳에 나 같은 사람도 할 일이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한참 내 길을 가다가 ‘이 길이 아닌 개벼..’ 그러지 않을 자신이 없다.

그러나 아직 복음이 없는 저 민족..
여긴 확실하다. 
복음은 편만하게 전해져야 하고, 아직 그 곳에 아무도 없으니까.. 누군간 가야 한다.
그럼 내가 가면 되겠네.

난 의심이 많아서..
남들이 다 맞다는 건 얼른 믿어지지가 않는다.
난 의심이 많아서..
사람들이 몰리는 데는 불안하다.

나에겐 복음만큼 확실한게 없고, 선교만큼 당연한게 없고, 이라크만큼 사랑스러운 땅이 없다.

그곳에 아직 복음이 없는데..
누군간 확실히 가야 하는데..
그럼 거길 내가 가야겠다.

그렇게 된 거다.

그리고 너무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이다.

주께서 잘했다고, 내가 너로 기쁘다고..
그럼 난 더 바랄 것이 없다.

Blogged with the Flock Browser

크리스 보티

May 14th, 2008

라헬이 표를 구해 줘서 덕규랑 셋이 Chris Botti 콘서트를 보고 왔다.

난 색소폰도 아니고 트럼펫이라니 별 기대를 안 했었는데..
이 트럼펫에서 참 고운 소리, 화려한 소리, 질-긴(듣다 보면 내가 숨이 멎을 거 같은) 소리가 난다.

게다가 Cinema Paradiso, The Mission, Love Affair 등 엔리오 모리코네의 곡들을 연주하는데 너무 좋은 거지..
너-무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더라.

나중에 공연 끝나고 사람들 싸인해 줄 때 가까이서 봤는데..

잘.생.겼.다. orz

51wmztidwylss500je2.jpg” cannot be displayed, because it contains errors.

Blogged with the Flock Browser

안그래도 이건 걸 원했다.

April 29th, 2008

WiFi Signal Detecting T-Shirt – via Dailywireless.org

전혀 새로운 환경으로 떠나기 위해 챙겨야 할 최소의 리스트..

이민 가방이 아닌 책가방 하나에 다 채워야 하고
어깨에 메고 오래 걸어도 지치지 않을 정도의 가벼운 무게여야 한다.

그러다 보니 하나씩 하나씩 포기하게 된다.
처음에는 기타를 챙길 생각이었는데…. 무게의 압박..
음..  괜찮아. 아카펠라로 부르면 돼 -.-

책은 좀 여러권 넣고 싶은데..
욕심 내 봤자 팔아프게 들고 다니다 길에서 분실할 가능성 농후

옷?
이건 가장 쉽게 포기한 건데.. 필요하면 현지 조달

끝까지 리스트에 남는 것은 이제 몇 개 없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게 노트북
그리고 요런 티셔츠 한장이면..
난 더 이상 아쉬움도 미련도 없이 미지의 세계로 ㅋ

Top Wish List 에 올려두자 ^^

텅빈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

April 16th, 2008

이정환님의 포스트 ‘페르세폴리스(Persepolis)’를 보다.를 읽고
아직 영화를 상영 중인 집 근처 극장을 찾게 되었다.

밤 9:20분 마지막 상영시간에 맞추어 극장을 들어가니..
이런 시츄에이션..


아.무.도.없.는.텅.빈.극.장!

덕분에 친구와 나는 오붓하게 영화 관람!
극장을 통째로 예약한 것보다 더 재밌고 유쾌한 경험.

영화는 참 좋았다.
조만간 막 내릴 분위기인데..
사람들 모아서 한번 더 가고 싶다.

그나저나 달러 무비 극장도 아니고..
이렇게 장사가 안돼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