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의심이 많은 아이였다.
초딩 때 반공도서를 읽고 독후감을 쓰는데..
그땐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는 것도 아니고, 외국을 나가 본 것도 아니고..
걍 쪼만한 동네가 세상의 전부이던 그런 시절이었는데..
공산당이 얼마나 나쁜지, 북한 어린이들이 어떻게 세뇌 교육을 받고 사는지, 그곳은 얼마나 폐쇄된 사회인지.. 그런 얘길 들을 때마다..
사실 정말 세뇌 교육을 받는 건 남한 어린이들이 아닐까..
사실은 북한이 열라 잘 살고.. 남한이 못사는 건 아닐까..
북한은 댑따 자유롭고 남한 사람들이 억압하고 갇혀 지내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중에 커서 보니.. 또 외국도 나가 보니..
북한이 정말 그렇다는 걸 여러 방법으로 알게 되었지만..
암튼.. 그 어린 시절에도 난 누가 일러주는 걸 곧이 곧대로 믿지 못했다.
…
아주 어릴 때부터 집 다음으로 익숙한 곳이 교회였다.
엄마 손에 이끌려 새벽기도도 다니고 주일학교, 여름성경학교 빠지지 않고 다녔다.
교회가 그냥 놀이터고, 집에 오는 손님도 거의 교회분들이고..
그 시골 동네에서 엄마랑 교횔 가는 건 거의 특권이었다.
내 친구 부모님 중엔 교회 다니시는 분이 없고 친구들은 저 혼자 주일학교를 오는데..
나는 교횔 가면 울 엄마가 주일학교 교사고, 집사님이고.. 어른들도 다 귀여워해 주시니까..
나중에야 알았다.. 거기선 내가 주류였고 다른 아이들은 비주류였던 걸..
내 친구들은 날 은근히 부러워했고 더러는 소외감도 느꼈다는 걸..
난 그렇게 너무 당연하게 교회를 다녔는데..
그랬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세뇌를 당했을 것만 같았다.
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으니까 교회를 다니지만, 만약 불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절에 다녔을 것 아닌가..
내가 살아온 환경을 배제한 후에도 예수님을 객관적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인지 난 오래 고민했다.
게다가 예수님 밖에 다른 구원의 길이 없다는데야..
세상에 그럼 억울한 사람이 너무 많지 않은가..
걍 불교 믿는 사람들은 극락 가고, 기독교 믿는 사람은 천국 가고.. 그럼 너무 좋을 것 같았다.
…
선교사 지원서를 작성하며 신앙 간증문을 쓰는데..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나에겐 극적인 회심의 사건이 없다.
중고등학교 시절 난 따지고 대들기 선수였다.
의심은 떨쳐지질 않고 믿음도 없으면서 믿는 척하는 것은 너무 익숙했고 그렇다고 모든 걸 부정하기는 찜찜했다.
믿음이 다 뻥이면.. 그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뻥을 친다는 건가.. 그것도 받아들이기 어렵고..
신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만큼, 신을 부정하기도 어려웠다.
뭔가 있기는 있다. 근데.. 그게 뭔가?
이 세계를 지배하는 어떤 원리와 질서가 있는 것 같다.
이 모든 걸 우연의 일치로 보는 건 너무 엄청난 믿음(?)을 요구한다.
창조주가 있다면 그 창조주와 우리는 무슨 상관이 있나?
창조주는 인간의 삶에 어떻게 개입하고 무슨 영향을 주나?
.. 내내 그런 고민과 질문을 했던 것 같다.
근데 나 어떻게 믿었지????
성경도 안믿어져서 막 괴로워하고.. (너무 기적이 많아..)
아무래도 이대로 죽었다가는 천국이 있다 한들 믿음이 없어서 천국도 못 갈 것 같았는데..
난 은혜로 믿었다.
어느 순간 믿어져서 믿었다.
중고등학교 때 차비를 아끼려고 많이 걸어 다녔다.
기본 한시간씩 걸었고 마을버스 안 다니는 새벽에 나갈 땐 삼사십분을 더 걸었다.
그때 난 공상하고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뭐 심심하니까 계속 하나님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믿어지든 믿어지지 않든.. 남들이 다 있다고 하니까.. 있다고 치고..
혹시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있었으면 좋겠고..
그러다 자연스럽게 고민을 얘기하고.. 기도하고..
난 어릴 때부터 왜 그렇게 마음이 곤고했나(?) 모르겠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는 줄을 그때 알았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상관하신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토록 크고 광대한 분이 그렇게까지 섬세하신 것에 감동하였다.
내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이분과 함께 가는 구나…
내 믿음은 조금씩 자랐고, 어려서부터 배웠던 성경이 살아있는 말씀이 되었다.
모든 걸 낱낱이 증명한 뒤에야 믿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인간이 초월자를 증명하겠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르겠거니와 전능자가 있다면 기적이야 그에겐 너무 사소한 일 아닌가?
그때부터 성경.. 막 다 이해되고..
인간이 설명하고 증명할 수 있는 일만 한다면 그게 무슨 신인가?
난 무엇보다 성경을 – 구약과 신약 통털어 – 관통하여 역사를 통해 진행되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언약과 성취(오실 주님과 다시 오실 주님),
십자가로 보여 주신 사랑의 능력, 율법이 아닌 은혜로 주시는 구원,
잘난 민족, 선택된 민족이 아닌 모든 민족을 부르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그렇게 벅차고 감동스러울 수가 없었다.
성부 하나님도 모든 민족 (창세기 12장 1-3절),
성자 예수님도 모든 민족 (마태 28장 19절),
오순절 성령님도 다시 모든 민족(행 2장 8절)..
하나님의 소원은 처음부터 언제나 모든 민족의 구원이고 모든 민족의 회복이었다.
어디 한두군데 숨어있는 말씀이라야 피하고 숨지..
난 확실한 게 아니면 잘 믿질 못한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믿는데 그렇다면 이보다 확실한 게 무어냐.
좋다. 모든 민족.
그렇다면.. 나는 이 땅의, 이 많은 민족 중 어느 민족을 섬길 것인가?
이미 복음을 받은 민족들.. 물론 그 곳에도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러나 이미 기라성 같은 사역자들이 있는 그 곳에 나 같은 사람도 할 일이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한참 내 길을 가다가 ‘이 길이 아닌 개벼..’ 그러지 않을 자신이 없다.
그러나 아직 복음이 없는 저 민족..
여긴 확실하다.
복음은 편만하게 전해져야 하고, 아직 그 곳에 아무도 없으니까.. 누군간 가야 한다.
그럼 내가 가면 되겠네.
난 의심이 많아서..
남들이 다 맞다는 건 얼른 믿어지지가 않는다.
난 의심이 많아서..
사람들이 몰리는 데는 불안하다.
나에겐 복음만큼 확실한게 없고, 선교만큼 당연한게 없고, 이라크만큼 사랑스러운 땅이 없다.
그곳에 아직 복음이 없는데..
누군간 확실히 가야 하는데..
그럼 거길 내가 가야겠다.
그렇게 된 거다.
그리고 너무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이다.
주께서 잘했다고, 내가 너로 기쁘다고..
그럼 난 더 바랄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