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Mission’ Category

확실한 선택

Thursday, May 15th, 2008

난 의심이 많은 아이였다.

초딩 때 반공도서를 읽고 독후감을 쓰는데..
그땐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는 것도 아니고, 외국을 나가 본 것도 아니고..
걍 쪼만한 동네가 세상의 전부이던 그런 시절이었는데..

공산당이 얼마나 나쁜지, 북한 어린이들이 어떻게 세뇌 교육을 받고 사는지, 그곳은 얼마나 폐쇄된 사회인지.. 그런 얘길 들을 때마다..
사실 정말 세뇌 교육을 받는 건 남한 어린이들이 아닐까..
사실은 북한이 열라 잘 살고.. 남한이 못사는 건 아닐까..
북한은 댑따 자유롭고 남한 사람들이 억압하고 갇혀 지내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중에 커서 보니.. 또 외국도 나가 보니..
북한이 정말 그렇다는 걸 여러 방법으로 알게 되었지만..
암튼.. 그 어린 시절에도 난 누가 일러주는 걸 곧이 곧대로 믿지 못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집 다음으로 익숙한 곳이 교회였다.
엄마 손에 이끌려 새벽기도도 다니고 주일학교, 여름성경학교 빠지지 않고 다녔다.
교회가 그냥 놀이터고, 집에 오는 손님도 거의 교회분들이고..
그 시골 동네에서 엄마랑 교횔 가는 건 거의 특권이었다.
내 친구 부모님 중엔 교회 다니시는 분이 없고 친구들은 저 혼자 주일학교를 오는데..
나는 교횔 가면 울 엄마가 주일학교 교사고, 집사님이고.. 어른들도 다 귀여워해 주시니까..
나중에야 알았다.. 거기선 내가 주류였고 다른 아이들은 비주류였던 걸..
내 친구들은 날 은근히 부러워했고 더러는 소외감도 느꼈다는 걸..

난 그렇게 너무 당연하게 교회를 다녔는데..
그랬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세뇌를 당했을 것만 같았다.
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으니까 교회를 다니지만, 만약 불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절에 다녔을 것 아닌가..
내가 살아온 환경을 배제한 후에도 예수님을 객관적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인지 난 오래 고민했다.
게다가 예수님 밖에 다른 구원의 길이 없다는데야..
세상에 그럼 억울한 사람이 너무 많지 않은가..
걍 불교 믿는 사람들은 극락 가고, 기독교 믿는 사람은 천국 가고.. 그럼 너무 좋을 것 같았다.

선교사 지원서를 작성하며 신앙 간증문을 쓰는데..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나에겐 극적인 회심의 사건이 없다.
중고등학교 시절 난 따지고 대들기 선수였다.
의심은 떨쳐지질 않고 믿음도 없으면서 믿는 척하는 것은 너무 익숙했고 그렇다고 모든 걸 부정하기는 찜찜했다. 
믿음이 다 뻥이면.. 그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뻥을 친다는 건가..  그것도 받아들이기 어렵고..

신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만큼, 신을 부정하기도 어려웠다.
뭔가 있기는 있다.  근데.. 그게 뭔가?
이 세계를 지배하는 어떤 원리와 질서가 있는 것 같다. 
이 모든 걸 우연의 일치로 보는 건 너무 엄청난 믿음(?)을 요구한다.
창조주가 있다면 그 창조주와 우리는 무슨 상관이 있나?
창조주는 인간의 삶에 어떻게 개입하고 무슨 영향을 주나?
.. 내내 그런 고민과 질문을 했던 것 같다.

근데 나 어떻게 믿었지????

성경도 안믿어져서 막 괴로워하고.. (너무 기적이 많아..)
아무래도 이대로 죽었다가는 천국이 있다 한들 믿음이 없어서 천국도 못 갈 것 같았는데..

난 은혜로 믿었다. 
어느 순간 믿어져서 믿었다.

중고등학교 때 차비를 아끼려고 많이 걸어 다녔다.
기본 한시간씩 걸었고 마을버스 안 다니는 새벽에 나갈 땐 삼사십분을 더 걸었다.
그때 난 공상하고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뭐 심심하니까 계속 하나님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믿어지든 믿어지지 않든.. 남들이 다 있다고 하니까.. 있다고 치고..
혹시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있었으면 좋겠고..

그러다 자연스럽게 고민을 얘기하고.. 기도하고..
난 어릴 때부터 왜 그렇게 마음이 곤고했나(?) 모르겠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는 줄을 그때 알았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상관하신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토록 크고 광대한 분이 그렇게까지 섬세하신 것에 감동하였다.
내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이분과 함께 가는 구나…

내 믿음은 조금씩 자랐고, 어려서부터 배웠던 성경이 살아있는 말씀이 되었다.

모든 걸 낱낱이 증명한 뒤에야 믿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인간이 초월자를 증명하겠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르겠거니와 전능자가 있다면 기적이야 그에겐 너무 사소한 일 아닌가?
그때부터 성경.. 막 다 이해되고..
인간이 설명하고 증명할 수 있는 일만 한다면 그게 무슨 신인가?

난 무엇보다 성경을 – 구약과 신약 통털어 – 관통하여 역사를 통해 진행되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언약과 성취(오실 주님과 다시 오실 주님),
십자가로 보여 주신 사랑의 능력, 율법이 아닌 은혜로 주시는 구원,
잘난 민족, 선택된 민족이 아닌 모든 민족을 부르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그렇게 벅차고 감동스러울 수가 없었다.

성부 하나님도 모든 민족 (창세기 12장 1-3절),
성자 예수님도 모든 민족 (마태 28장 19절),
오순절 성령님도 다시 모든 민족(행 2장 8절)..

하나님의 소원은 처음부터 언제나 모든 민족의 구원이고 모든 민족의 회복이었다.

어디 한두군데 숨어있는 말씀이라야 피하고 숨지..
난 확실한 게 아니면 잘 믿질 못한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믿는데 그렇다면 이보다 확실한 게 무어냐.
좋다. 모든 민족.

그렇다면.. 나는 이 땅의, 이 많은 민족 중 어느 민족을 섬길 것인가?

이미 복음을 받은 민족들.. 물론 그 곳에도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러나 이미 기라성 같은 사역자들이 있는 그 곳에 나 같은 사람도 할 일이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한참 내 길을 가다가 ‘이 길이 아닌 개벼..’ 그러지 않을 자신이 없다.

그러나 아직 복음이 없는 저 민족..
여긴 확실하다. 
복음은 편만하게 전해져야 하고, 아직 그 곳에 아무도 없으니까.. 누군간 가야 한다.
그럼 내가 가면 되겠네.

난 의심이 많아서..
남들이 다 맞다는 건 얼른 믿어지지가 않는다.
난 의심이 많아서..
사람들이 몰리는 데는 불안하다.

나에겐 복음만큼 확실한게 없고, 선교만큼 당연한게 없고, 이라크만큼 사랑스러운 땅이 없다.

그곳에 아직 복음이 없는데..
누군간 확실히 가야 하는데..
그럼 거길 내가 가야겠다.

그렇게 된 거다.

그리고 너무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이다.

주께서 잘했다고, 내가 너로 기쁘다고..
그럼 난 더 바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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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료한 이야기

Sunday, March 23rd, 2008

사도행전 1장 6절 – 8절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너희의 알바 아니요.. >.<

이게 곰곰 생각하면 아주 웃긴 표현.

어차피 인생의 지혜로 다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되라.

단순하게 순종하자.


사도행전 1장 10절 – 11절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무엇을 어떻게 할까.. 두려울 것도 망설일 것도 복잡할 것도 없다.

그분이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약속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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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정보 기고

Monday, September 3rd, 2007

코너명: FO 간증

글쓴이: 김한나/2007 이라크 여름 FO 참가자

제목: 기쁨과 소망의 땅 이라크

이라크라는 말을 꺼내는 그 순간 내 마음엔 이미 기쁨과 소망, 위로와 감사, 그리고 가슴 한 구석이 뻐근하고 아릿하기까지한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이라크 FO를 결정할 때부터, 이제 그 땅을 오롯이 품게 되기까지 이것이 나의 의지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인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고, 그분의 위대한 사랑에 동화되어 잃어버린 사람들을 향한 사랑도, 아버지를 향한 사랑도 내 안에 함께 자라는 것을 고백한다.
 
모든 민족을 사랑하시는 아버지, 그리고 어느 한 민족도 외면하거나 버리지 않으시는 아버지..

장기화된 전쟁 이후 극도로 불안정한 국내 상황과 막혀버린 입국의 길, 주변국가와의 긴장과 외세의 개입으로 희생당하는 이라크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 땅이 어떻게 열릴 것인지, 그 민족이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 지 막막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FO를 통해 알게 된 것은 그 땅은 참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돌보시는 땅이며, 하나님을 알기 위해 목마르고 주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땅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처음부터 이라크를 품었던 것은 아니다.  이라크를 위해 오래 기도해왔지만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살면서도 그 땅이 내가 섬길 수 있는 땅, 내가 가야하는 땅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얼마는 두려움 때문이고 얼마는 나의 관심이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 미주에서 이라크 FO팀이 결성된 것을 5월이 다 되어, 그것도 이미 다른 지역에 FO 가기로 정한 후에 듣게 되었다.  미주 FO 담당 간사님으로부터 내가 가려는 곳 대신 이라크를 가라는 권유를 받았을 때, 내게는 그 일이 마치 바울이 본 마게도냐인의 환상처럼 이라크를 향한 부르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기도할 시간을 달라고 부탁드렸고 다음날 이라크 FO를 결정했다.  미국에서 시민권을 갖고 사는 이유가 한국 사람은 못 들어가는 그 땅을 섬기라는 이 때를 위함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는 내 안의 불순한 동기와 자아와 의지를 꺾으셨다.  어쩌면 처음 내 마음엔 하나님의 나라와 잃어버린 영혼보다 아무도 가지 않는 이라크를 간다는 자체에 더 관심이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 없는 일이라고 부인하면서도 내 믿음과 용기를 뽐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라크 FO를 준비하던 중 갑작스런 사고로 사랑하는 부모님을 잃었고 그 일을 통해 세상 기쁨, 세상 소망이 다 끊어지는 심정이 되었다.  마음이 힘들수록 하늘의 소망은 더욱 분명해지고, 부모님께서 사랑하신 교회를 나도 사랑하고 부모님의 희생을 값없이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이라크를 진심으로 품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하나님께서 같은 회사에 다니는 이라크인 동료와 그를 통해 만난 쿠르드 식당 주인, 이라크 NGO 단체 등을 연결시켜 주시며 많은 현지 정보를 얻게 하셨고, 이번 FO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내 안의 모든 두려움과 불안함을 걷어가셨다.  떠나기 일주일 전 일어난 아프간 단기팀 피랍사건을 바라보며 난 또 한번 내 자신이 선교지에 가려는 동기를 재검하였다.  많은 분들이 걱정하고 반대하셨지만 모든 민족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필요하다는 자명한 진리, 이렇게 어려운 상황일 수록 누군가 계속해서 순종하는 믿음을 주께 올려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한편에는 떠나기 전부터 벌써 많은 사람을 연결시켜 주시고 FO에 대한 기대를 부어주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지키시고 새로운 일을 하시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라크로 떠나기 전날 청년부 전도사님 사모님께서 나에게 히브리서 말씀(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히13장 6절)이 적힌 카드를 건네 주셨다.  나는 이 말씀을 받고 한참 울었다.  말씀이 나의 믿음을 확증해 주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과 그들이 하는 일이 두렵지 않았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심을 믿었다.

이번 이라크 FO팀은 터키 동부 도시 디아르바크르에서 육로로 이라크 북부 국경을 통과하여 쿠르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쿠르디스탄 내 3개 주요 도시(두혹, 아르빌, 슬라이마니)에서 사역을 하였다.  이라크 내에서 가장 안전하고 재건이 활발한 지역이었다.  무척 긴장하고 들어간 것이 무색할 정도로 그곳은 안전했고 생각했던 것보다 여유로웠다.  실제로 지난 4년 간의 이라크 전쟁에서 빗겨 있었던 이라크 북부 쿠르드 지역은 과거 사담 후세인과 그의 부인들이 여러 별장을 지을 정도로 아름다운 장소들이 있고, 걸프전 이후 보장받은 자치권과 재건의 노력으로 터키, 이란, 시리아 등지의 쿠르드족의 삶이나, 절대 빈곤한 아프간, 예멘 같은 나라에 비해서는 안정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피상적인 관찰이었는지 깨닫는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믿을 수 없이 친절하고 낯선 동양인들을 반겼던 그들은 우리가 이라크와 그 땅의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자 자신의 곪은 상처들을 내 보였다.  과거 후세인의 학살과 오랜 전쟁의 충격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사람들, 살기 위해 외국으로 도망치다 오히려 죽고 다친 사람들, 무법지대가 되어버린 바그다드에서 도망쳐 온 난민들, 끊임없이 누군가의 도청과 감시를 두려워하는 지식인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도 예수님께 기도하자는 우리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이 너무 가난했다.  무슬림이면서 성경책을 숨겨두고 읽는 할아버지도 만났다.  자신은 종교가 없지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성경 말씀이 좋다고 그 말씀을 벽에 붙인 대학 교수님도 만났다. 

그들은 마치 누군가 예수님을 전하기만 하면 마음이 다 녹아버릴 듯 복음을 기다리는 사람들 같았다.  한국사람을 너무 좋아하지만 한국인들은 그 땅에 들어갈 수가 없고, 반서구 정서가 강한 것을 알고도 신실한 백인 형제들은 벌써 그곳에서 많은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다.  한편 부끄럽고 또 안타까운 것은 학교나 병원, 여성, 어린이 센터 등 구호와 복지에 전념하는 팀이 여럿 있었지만 이라크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할 팀이 거의 없는 현실이었다.  누군가 이 역할을 감당할 사람들이 필요했다.

이번에 이라크에 들어간 팀은 한국 사람이면서도 미국 시민권을 가진 1세와 1.5세들이 대부분이었다.  언젠가는 상황이 바뀌겠지만 아직은 한국팀들이 그 땅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시리아, 터키 등 국경에서 이라크를 위해 기도하고 떠난다는 말을 들었다.  아브라함, 요나, 다니엘을 비롯하여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살았던 이라크 땅, 지금은 전쟁 끝에 피 흘리며 고통받고 있지만 그 땅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기도가 쌓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기도는 절대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미 마음을 열고 기다리는 곤고한 그들을 위해 복음을 전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갈 수 없다면 미주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어날 수 있는데 지금까지 그 땅을 섬기지 못한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나에게 이번 이라크 FO는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들을 사랑하시는지, 그 사랑이 나에게도 전달되는 시간이었다.  이상한 것은 나는 분명 그들을 위해 울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순간 내 안의 아픔과 슬픔도 함께 어루만지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가 어둡고 세상엔 고통과 슬픔이 가득하지만, 그럴수록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소망인 것이 분명하고 그 이름의 능력이 이 땅의 곤고한 영혼들을 구원하고 회복시키실 것을 생각한다.  이라크는 진정 나에게 기쁨과 소망의 땅이었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으로 낙심하지 않고 믿음의 눈으로 이라크의 모든 민족이 주님께 돌아오는 그날을 바라보며 그 땅을 위해 기도하고 섬기겠다고 주님께 고백한다.

기뻐하라 이라크! 기뻐하라 쿠르디스탄!

세르차오

Thursday, August 23rd, 2007

쿠르드 사람들은 주변 민족에게 끊임없이 이용당하고 배신당한 역사를 안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말하기를 산 밖에는 친구 없는 민족이라고 한다.

이들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들과 전혀 상관 없는 나조차 분노가 솟기도 한다.
쿠르디스탄 지역은 석유와 수자원과 각종 광물이 풍부한 천혜의 땅이지만
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선물을 제대로 누려보지 못했다.
있는 것도 뺐기고.. 주변 나라로부터 소외되고.. 멸시 받고..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이 사람들 어쩜 그렇게 친절할 수 있냐는 것이다.
맨날 뒤통수 맞고도 어쩜 그리 쉽게 사람을 믿을 수 있냐는 것이다.
자기들이 잘 사는 것도 아니면서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먹을 거 주고..
택시비 내 주고, 끝까지 남아서 도와주고, 전화해서 챙겨주고…

이 사람들은 사랑받은 민족은 아니지만
참으로 사랑할 줄 아는 민족이었다.

난 이 사람들을 보면서 또 한번 배웠다.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게 더 중요하다.
언제나 먼저 사랑받고 싶지만.. 
배신당하더라도 사랑하는 것이 더 아름답다.

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남이 나를 사랑하기 전에 먼저 사랑하기는 두려웠고..
상처받지 않을 만큼만 마음을 주고 상처에서 자유로운 줄 알았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더니..
내가 꼭 그 벌을 받는다.

쿠르드 사람에게 고맙다고 "수파-스" 하고 인사하면..
꼭 이렇게 대답한다.  "세르차오"

문자적인 의미로는 "by my eye" 이런 뜻이고..
의역을 하면 "my pleasure"란 뜻이다.

세르차오~ 하고 인사할 땐 오른손으로 오른쪽 눈을 가렸다 떼며 고개를 숙인다.
난 이 표현에 완전히 반해 버렸다.
세르차오..
세르차오..

자기가 고마운 일을 해 주고도
이사람들 한번도 고맙단 인사에 you bet 이라거나, you’re welcome 이러는 게 아니라..
자기가 더 고마워하며 세르차오.. 말하고 어쩔 줄을 모른다.

난 돌아와서도 가끔 속으로 세르차오.. 세르차오.. 해본다.
발음도 예쁘고..  제스쳐도 멋지고
그렇게 말하던 그 사람들이 참 사랑스러워서 말이다.

ㅇiㄹrㅋFO PPT Report

Thursday, August 23rd, 2007

무비파일 하나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결국 이렇게..

첫번째 것은 비디오, 두번째 것은 사운드 입니다.
동시에 플레이해주세요.. 쿨럭.. orz


ㅇiㄹrㅋFO 완전 종합 Final Report

Monday, August 20th, 2007

바로 여길 클릭하시면 됩니당!

Connecting People

Saturday, August 18th, 2007


나는 Connecting People이라는 Nokia의 슬로건이 참 맘에 든다.
참으로 맥락있는 슬로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오늘 쓰려는 글은 내가 이번 ㅇiㄹrㅋFO 기간 동안 만난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모든 사건의 중심엔 사람들이 있고
하나님께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시며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난 평생에 자신하는 두 가지 복이 있는데 바로 먹을 복과 인복이다.
나는 말 띠에 말 달에 태어났는데 어느 운세풀이에선가 말의 먹이가 풍부한 음력 5월 생이라 먹을 복이 많다 그런다.  난 운세야 믿지 않지만.. 먹을 복을 타고 나긴 한 것 같다.  예를 들어 어느 집에 놀러가면 마침 그 집에 그날 따라 맛있는 요리를 했다든가.. 밥시간 다 지나서 먹을 게 없겠지 하고 늦게 가도 내가 가는 딱 그 시간에 serving을 한다든가..  회사에서도 우리 부서 만큼 밥을 많이 사주는 부서가 있나 싶고(물론 일도 많다) 똑같이 밥을 먹어도 높은 분들이 계셔서 덩달아 비싼 거 시켜먹고.. (켁 >.<) 이번 FO 때도 우리 팀만 중국 음식과 김치를 구경한 것을 보면 난 과연 먹을 복이 있다. ㅎㅎ;;

또 하나는 인복인데..
나 개인이야 그저 평범할 뿐이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엔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  내가 어떻게 그 사람들과 친구과 되고 알게 됐는지 그 자체가 은혜다.. 그게 하나님께서 나에게 붙여 주신 사람들이고 내 복인 것 같다.  이번 FO 기간에도 나는 별별 사람을 다 만나고 다녔는데.. 이게 하도 놀랍고 신기해서 오늘은 그 얘길 좀 하고 싶다.

Day 1
비행기를 놓치다.
황당하기 이를데 없지만.. 난 첫날 비행기를 못탔다.
하지만 난 기적같이.. 추가요금 없이 ㅠ.ㅡ 티켓을 살려 다음날 똑같은 항공표를 구하게 된다.
긴 설명이나 변명은 하지 않겠다.

Day 2-3
결국 팀과 분리되어 혼자 터키까지 가게 되었고..
이스탄불에 도착해서 디아르바크르행 비행기를 타려고 터미널을 옮겼다
이스탄불 국제선 터미널까진 괜찮았는데 국내선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지더니 영어 하는 사람도 없고 난 좀 긴장한 상태였다.  갑자기 내가 기다리던 항공편이 스크린에서 사라져서 게이트가 바뀐 건 아닌지.. 당황해하고 있는데 어리버리한 내 곁으로 한 아저씨(쌀콧)가 다가왔다. 유창한 영어로 나에게 말을 걸었고 알고보니 아저씨와 나는 디아르바크르 뿐만 아니라 최종 목적지까지(ㅇiㄹrㅋ) 같다.  완전 반가워하는 나에게 쌀콧은 비싼 커피까지 사주었다. 터키 공항 물가는 참 비싸다.  허접한 케밥 한접시에 25불이 넘고 블랙커피 한잔이 5불도 넘는다.

쌀콧의 친절한 안내로 뱅기도 같이 타고 뱅기 좌석도 옮겨서 가는 길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쌀콧은 러시아어, 영어, 아랍어, 쿠르드어를 유창하게 말하고 바그다드에서 외교 관련 일을 돕고 있다고 했다.  그와 대화를 나누며 ㅇiㄹrㅋ 사람, 또 쿠르드 사람들의 생각을 많이 들을 수 있었고 또 내가 가려는 도시에 자신의 집이 있다고 잘 데 없으면 와서 자라고, 또 그 동네에서 가장 저렴하며 깔끔한 모텔 정보, 국경 정보 등을 얻을 수 있었다. 디아르바크르에 도착해 난 먼저 와 있는 팀과 합류했고 쌀콧과 헤어졌다.

Day 4
ㅇiㄹrㅋ에 도착해서 첫번째 도시로 이동. 쌀콧이 알려준 숙소로 직행했으나 주말을 앞두고 방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다른 호텔을 찾아야 했다.  쌀콧에게 전화를 하려는데 우리가 묵지도 않는 호텔 매니저가 자기 SIM 카드를 꺼내 주며 쓰라고 준다.. 아.. 이 사람들 왜 이렇게 친절해 ㅠ.ㅜ 미국에서 가져 간 휴대폰에 SIM 카드를 꽂고 방을 구해서 짐을 풀고 씻고 저녁 먹고 예배하고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Day 5
오늘의 미션은 과일 사오기와 신문 구하기..
문제는 이날이 이곳 주말이라 문 연 가게가 거의 없다는 것… 찾고 헤메다 한 서점에 도착.
그 곳에서 서점 주인 할아버지와 얘기하며 쿠르드인의 상처와 아픔을 깊이 느끼다.
그를 위해 축복해 주고 예수님을 전한 뒤 쌀콧을 만났다.

쌀콧은 우리팀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아내와 아이들을 소개시켜 줬고 잠시 후 자기 친구들을 부르더니 우리를 데리고 관광을 시켜줬다. 그리고 그날 쌀콧을 통해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우리가 현지 지도를 찾으니 쌀콧 동생이 Tourism Director이라며 지도를 갖다 주겠다고 했고, 또 우리를 크리스찬으로 소개 하였더니 그 마을의 아주 오래된 크리스찬 Village로 우리를 안내해 줬는데 그 곳에서 ㅇiㄹrㅋ의 전쟁 고아들을 돕고 있는 요르단 출신 아저씨, 또 ㅇiㄹrㅋ 재건 사업을 위해 나와 있는 TX 샌안토니오 출신 General(이 사람은 쌀콧의 uncle이었고 한글로 적힌 자이툰 벨트를 차고 있기도 했다), 또 현지 교회 리더를 만났다. 그리고 사담과 그의 부인들의 휴양지였던 지역들을 거쳐 ㅇiㄹrㅋ 북부 지역의 가장 아름다운 곳들을 보여주었고 그 과정에 우리와 동행했던 쌀콧 친구(런던과 ㅇiㄹrㅋ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거부) 및 쌀콧 친척들과 교제하며 많은 지역 유지를 만날 수 있었다.

Day 6
다른 도시로 이동

Day 7
마을과 시장을 돌아다니며 사역하다가 가정집에 초대받음.

자고 가라는 것을 만류하고 함께 기도하고 나옴.
숙소로 돌아와 마침 업무관계로 우리와 같은 도시에 있는 쌀콧과 만나 그의 또 다른 친구와 연결됨. 쌀콧은 그 날로 집으로 돌아가고 그의 다른 친구를 통해 저녁에 도시 공원 투어 및 다음날 이동 택시 기사 연결.
낮에 점심 먹은 집에서 잘 있냐고 전화 옴. ^^

Day 8
우리팀 3명만 또 다른 도시로 이동(~ 4시간)하여 M과 M의 팀 리더를 만남.
우리를 소개하고 비전 나눔.
M을 통해 캐나다 출신 한인 선교사님과 연결
시장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사온 과일로 끼니를 해결한 뒤 한인 선교사님 부부가 우리 숙소 방문, 교제

Day 9
지역 도서관, 대학에서 현지인들과 만나 교제함.

이날 오후 M의 친구 G와 연결되어 그와 함께 사담이 많은 쿠르드인을 학살했던 감옥 등을 보며 (총탄 자국이 수도 없이 박혀 있는) 이 땅의 아픔을 느끼고

저녁엔 M의 소개로 나는 해당 도시의 가장 큰 브로드밴드 사업자 CTO를 만나게 된다.  그는 나에게 미국에 돌아가거든 우리 회사로부터 Proposal을 내달라고 까지 제안하였다.. (나의 오랜 꿈의 실현이 성큼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내가 다시 ㅇiㄹrㅋ에 온 다면 나의 신분도 해결해 주겠다고 했다. ㅠ.ㅜ

저녁은 한인 선교사님께서 준비한 한국 음식을 먹었는데.. 이날의 식사는 양고기 냄새에 지친 우리에게 한줄기 빛이었다.

Day 10
대망의 FO를 준비하며 숙소에서 쳌아웃을 하고 M의 집에 우리 짐을 맡김.

오전엔 전날 만난 대학 교수님을 다시 한번 방문해서 그에게 사랑을 전하고 그와 함께 ㅇiㄹrㅋ와 쿠르드 민족을 위한 기도제목을 나누고 함께 기도함.

이날 오후 M의 팀과 우리는 S 도시에서 가장 높은 산에 올라 S 땅을 바라보며 같이 예배하고 기도함.
우리가 영어, 스패니쉬, 한국어로 동시에 찬양할 때 그 조용하던 산 정상에 갑자기 바람이 일며 성령님의 임재를 느낌

Mountain

이날 오후 우리팀은 또 한번 마을을 방문하여 사역하다 가정집에 초대를 받아 그 집에서 먹고 자며 하루를 보냄.
마침 우리가 묵었던 집 옆집에 바그다드에서 온 박사님 가정이 살고 있어 두 가정과 우리팀.. 대략 20명이 모여 교제를 나누고 박사님이 거의 우리의 통역이 되어 주심. 그날 밤 헤어지기 전에 용기를 내어 그 무슬림 가정에서 ㅇiㄹrㅋ의 아픔과 우리와 교제한 가정들을 위해 다 함께 손 잡고 예수님께 기도함.

Day 11
아침에 일어나 팀과 함께 예배한 후 우리가 묵은 가정에 복음을 전했고, 주인 아저씨가 직접 우리를 다른 4~5시간 걸리는 다른 도시까지 데려다 주신다고 하시는 걸(여기 사람들은 정말 상상도 못할 정도로 친절하다.) 겨우 만류하고 다른팀과 합류하여 다시 첫번째 도시로 돌아감.

Day 12
현지에서의 마지막 날.
오전엔 함께 산에 올라 우리가 미처 갈 수 없었던 분쟁 지역들 경계를 바라보며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고
오후에 팀별로 흩어져서 사역
나는 마지막으로 쌀콧을 만나 감사를 표하고 또 내가 후에 ㅇiㄹrㅋ로 나오면 자신이 언어도 가르쳐 주고 도와주겠다고 함.
터키에 가면 하루를 묵어야 하는데 쌀콧이 우리가 묵을만한 싸고 좋은 위치의 모텔과 택시 정보를 줌.
마침 쌀콧네 집에서 쿠르드어로 더빙되어 나오던 한국 드라마..

Day 13
터키 국경으로 다시 이동
전에 책방 할아버지에게 선물로 받았던 쿠르지스탄 지도 압수되어 찢김.
디아르바크르 도착

Day 14
이스탄불로 이동, 관광

Day 15
Back to the States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도움을 받았던 사람은 바로 쌀콧이었는데…
내가 만약 혼자 늦게 오지 않았다면 그를 만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의 실수와 사고를 통해서도 하나님께선 역사하신다.

또 M과의 만남. 기도편지만 받고 이메일로만 소식을 전하던 그를 만났을 때 큰 기쁨이 있었고
그를 통해 그의 팀과 그의 친구들과 소중한 만남을 갖게 된 것이 참 감사하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통해 역사하신다.
사람들이 있기에 그 땅도 소중하다.
벌써부터 그 땅이 그립고, 그 사람들이 그립다.

Connecting.the.dots

Saturday, August 18th, 2007

이번 ㅇiㄹrㅋ 여행을 통해 확실해진 것 하나는 내가 ㅇiㄹrㅋ를 오롯이 품게 되었다는 것이다.

원래는 비전스쿨을 들을 때 한 민족을 품어야 하는데 난 졸업하고 간사생활 한 지 5년이 넘도록 마음에 정함이 없이(?) 방황하다가 이번에야 내가 가장 섬기고 싶은 한 나라를 찾게 되었다.

전에도 썼지만 한 종족 한 종족을 알아갈 때마다 모두가 소중한 민족이라 하나를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난 강자에겐 비굴해지기 싫어 개기고 약한 사람, 아픈 사람 보면 마음이 다 녹아지는 편이라, 특히 우리나라와 비슷한 아픔의 역사가 있는 나라들(ㅇr프ㄱrㄴ, ㅇiㄹrㅋ), 나라 없는 민족들(쿠르드, 팔레스타인)을 생각할 땐 언제나 눈물이 많이 났다.  거기다 선교사님들 오셔서 섬기시는 종족을 말씀하시면 그때마다 마음이 바뀌니.. 이번 FO만 해도 1주차 강의때는 몽골/시베리아에 가려던 것이 6주차 땐 타타르로 바뀌어 있었고, 결국 ㅇiㄹrㅋ를 간다고 나선 나를 보고 다른 간사님들이 얼마나 놀렸는지 모른다.  정말이야? 이번엔 확실해? 하고 말이다.  음.. 다들 대표간사를 물로 보는 게야… -.,-

그런데 정말 사람이든, 민족이든 제 짝이 있는 것 같다.
도무지 한 민족 정하기를 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이번에 ㅇiㄹrㅋ에 다녀온 뒤에는 자신있게 ㅇiㄹrㅋ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서야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러고 보니 과거의 모든 사건들이 ㅇiㄹrㅋ로 정하기까지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 Steve Jobs의 Stanford 졸업축사 연설

2003년  3월 ㅇiㄹrㅋ 전쟁 직전 임선생님이 달라스에 오셔서 현지 상황을 나눠주셨고, 나는 전쟁이 시작되던 그 주에 성경공부반 지체들을 모아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했었다.  어이없게도 전쟁은 일어났고, 더 기 막힌 것은 교회 안에 ㅇiㄹrㅋ 전쟁과 부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ㅇiㄹrㅋ 전쟁을 구약시대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전쟁과 비교하는 사람, 또 민감한 이슈를 피해가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난 더러 고립된 기분, 왕따된 느낌이 들기도 했다.

ㅇr프ㄱrㄴ과 마찬가지로 ㅇiㄹrㅋ도 전쟁으로 열린 것을 보며 마음이 아팠고.. 그래서 더 ㅇiㄹrㅋ엘 가서 돕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또 후에 내가 아는 한 형제가 ㅇiㄹrㅋ로 단기 사역을 나간 소식을 들으며 도전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2004년 여름 김선일씨 사고와 계속 이어지는 전쟁 탓에 ㅇiㄹrㅋ를 생각하면 ㅇr프ㄱrㄴ 보다도.. 왠지 두려운 마음이 앞섰고 선뜻 가겠다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작년에 선교캠프 때 콰이어 팀에 섰는데 그때 수호형제님이 자비로 콰이어팀을 위한 티셔츠를 맞춰 주었고, 각 티셔츠 마다 미전도종족 국기를 붙였는데.. 이제 와 생각하니 재밌는 일이지만 그때 내가 입었던 티셔츠에는 ㅇiㄹrㅋ 국기가 붙어 있었다.  우연이라고 보면 우연이지만, 지나고 보면 각각의 독립된 사건들이 퍼즐의 일부가 되어 착착 맞아 떨어지는 일들이 세상엔 많다. 이걸 미리 알 수만 있다면 당장 돗자리를 깔텐뎅.  >.<

—–

5월 중순까지도 난 아프간과 타타르를 놓고 고민 하다가 FO 담당 간사님께 전화를 걸어 타타르를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런 나에게 담당 간사님이 말씀하시길 "간사님!  ㅇiㄹrㅋ 가시면 안돼요?"  ㅠ.,ㅜ  난 그날 한국 사람은 못 들어가는 그 땅에 미주 사람들로 구성된 ㅇiㄹrㅋFO팀이 있는 줄을 처음 알았고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타타르엘 가고 싶었지만 마치 아시아로 가려했던 바울이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고 로마로 가듯(사도행전 16장) 나에게도 ㅇiㄹrㅋ팀의 절실함을 설명하시는 간사님 말씀을 통해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루 기도할 시간을 달라고 부탁드렸고, 난 이것이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신 길이라는 생각으로 ㅇiㄹrㅋFO를 결정했다.

이번 팀이 전쟁 후 거의 첫번째 팀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에 현지 자료 전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아무 계획도 없는 상태에서 팀이 결성되었다.  팀 리더 조차도 느낌이 좋지 않다며 내켜하질 않았고 나 역시 블로그에 몇 번이나 지난 삶을 돌아보는 글(1, 2, 3, 4)을 쓰게 된 것이 실은 만일의 경우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선교는 그렇다.  바울이 잡힐 것을 알고도 로마에 갔듯 부르심이 있는 곳으로 순종하고 나가는 자들에 의해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조선 말기 우리나라에 왔던 토마스 선교사는 조선 땅 한번 밟지 못하고, 복음 한번 전하지 못하고 배 위에서 순교하였지만 하나님은 그와 같은 사람들을 통해 이 땅 위에 교회를 세워가셨다. 

그렇다고 우리가 죽기를 목표로 달려드는 무식한 사람들도 아니다.  우리는 생명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신 것을 믿고 그분이 인도하시는 삶이 가장 안전한 삶임을 믿으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분의 마음을 따르길 애쓸 뿐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으며 영원한 하늘 소망이 있는 사람들이 옳은 일을 위해 잠시 작은 것을 희생하는 것은 결코 어리석지 않다.  "젊은이여, 평범한 죽음을 두려워하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바람부는 날 간판 맞고 죽을 수도 있는데 청년의 때에 뜻을 정하여 주를 따르는 삶이 어찌 무의미하겠나..  설령 희생이 따르더라도 말이다.

설명을 하다보니 거창해졌지만, 우리팀이라고 해서 대단한 믿음이 있어서 ㅇiㄹrㅋ를 간 것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적어도 내 경우는 그랬다. 하지만 마음이 평안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난 2년 전부터 미국 교회를 같이 다니고 있는데 거기서 미국 교회 선교사인 M을 알게 됐고 쭉 그의 기도편지를 받고 있었다.  현지 정보가 전무한 상태에서 난 1년 전 ㅇiㄹrㅋ에 들어간 M을 떠올렸고 그분과 연락을 취하며 우리 팀이 ㅇiㄹrㅋ 국경을 통과하는 것과 현지 상황에 대한 조언을 받았다.  또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ㅇiㄹrㅋ출신 동료가 있었는데 그를 통해 위급할 때 연락하라는 연락처도 받고 그가 연결해준 다른 ㅇiㄹrㅋ 사람을 통해 우리가 들어가려는 지역에 대해 매우 상세한 정보를 얻었다. 국경을 통과하는 과정에 도움을 줄 사람들도 많이 연결되었다.

ㅇiㄹrㅋ팀이 결성되고도 2달 여 동안 사실 별다른 진전이 없었고.. 개인적으로는 너무 큰 일을 당해 아무것도 못한 채 한달을 보냈다.  비로소 정신을 차렸을 땐 기간이 너무 앞으로 다가와 있었고 과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들었다. 게다가 우리팀이 ㅇiㄹrㅋ에 들어가기 일주일 전 ㅇr프ㄱrㄴ 사건이 일어나 너무 많은 분들이 걱정을 하시니 교회 안팎으로ㅇiㄹrㅋ 간다고 말 꺼내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고백하는 것은 선교란 바로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는 일이며 우리는 다만 우리의 순종을 드리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없고,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다고 느꼈던 그 때부터 하나님은 다양한 사람들을 주변에 붙여 주셨고, 그 한사람 한사람을 통해 우리 팀의 갈 길을 예비해 주셨다.  

그래서 난 막연히 느끼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번 여행동안에 커다란 기쁨을 부어주실 거라는 것.
하나님께서 다 준비하고 계시며 우리는 그 땅에서 예배하고 누리고 오면 된다는 것.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또 이번 여행 기간 동안 내 안에 가득했던 느낌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그건 "JOY"였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세상엔 의지할 데 별로 없는 나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
그 분을 예배 하는 것..
그 분이 이끌어주신 땅을 밟고 그 땅에서 사랑받고 사랑을 나누는 것..

사람들은 그 땅이 척박하고 메말랐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에게 그 땅은 가장 아름답고 소망이 넘치는 땅이었다.
그래서 그 땅이 내 땅이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나에겐 최고의 기쁨이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사랑이다.

복숭아

Thursday, August 16th, 2007

DSCN1761
Originally uploaded by islbee.

ㅇ i ㄹ r 크에선 그 어느 선교 여행 때 보다 과일이 풍성했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수박과 복숭아..
더위를 먹어 입맛도 없고 양고기 냄새에 질려 밥을 먹을 수 없을 때 수박과 복숭아가 있어 겨우 버텼다.

수박은 물처럼 흔했고
복숭아는 어쩌다 한번씩 먹었는데..
(값도 싼데 좀 왕창 사오지.. ㅠ.ㅜ)

난 수박을 앉은 자리에서 반통을 먹고 복숭아도 있으면 있는대로 계속 먹는 타입이라 한 개씩 겨우 돌아가는 복숭아에 미련이 많았다.

어제 그로세리에 들려선 마침 복숭아가 세일이길래 복숭아를 왕창 사고 오늘 회사에 세 개를 싸 왔다. 한참 즐겁게 복숭아를 먹다가 세 개째를 찾는데 난 분명이 두 개만 먹은 거 같은데 냅킨 위에 씨 세 개가 덩그라니 놓여있다.
아.. 언제 내가 세 갤 다 먹었군.. -.-

현지의 과일 시장 사진을 올려본다.
너무 탐스럽지 않은가?
메소포타미아 땅은 참으로 축복받은 땅이다.
난 그 땅이 석유만 있는 사막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 가보니 물과 과일이 풍부한 아름다운 땅이었다.

복숭아 씨로 떠올리는 작은 추억..

Back in the States

Wednesday, August 15th, 2007

약 2주 간의 이라크 선교를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권을 빼곡히 채운 중동 국가 출입국 도장 때문에
이번에도 따로 불려 잠시 검문(?)을 당했지만 – 직업이 뭐냐?, 이 나라는 왜 갔냐?, 무슨 일을 하고 왔냐?, 짐은 어딨느냐? 등등..
소신껏 대답했고,
인터뷰 하던 사람이 잠시 어딜 다녀 오더니 여권을 돌려주며
훌륭한 일 한다고.. God Bless You.. 라는 말을 듣고 비행기를 탔습니다.

Cincinnati 공항을 거쳐서 DFW로 돌아왔는데
입국 심사하는 과정에서 US Passport를 보여 주니
지문도 사진도 필요없고 "Welcome Back" 하고 웃으며 보내주는데..
참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여기가 우리 집이구나..

작년 오만 때 보다 이번 이라크 여행을 거치며 시민권을 따길 얼마나 잘 했나 몇 번 생각했습니다.
가장 먼저는 미 시민권이 있기 때문에 이라크엘 갈 수 있었고
이라크 안에서 도시 경계마다 거쳐야하는 검문소에게도 US Passport만 보여주면 아무 것도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이라크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부러워한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닌, 바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신분이었습니다.

미국에 들어오는 것도 그렇게 쉬울 수가 없습니다.
다른 외국인들처럼 지문이나 사진을 찍을 일도 없고..
여러 서류를 작성할 이유도, 오래 서서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마음껏 돌아다니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는 신분이 있다는 것..
내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이 그토록 엄청난 것이란 걸 전엔 미처 몰랐었습니다.

짐이라곤 책가방 하나였는데
짐이 너무 적은 것도 이상하게들 생각하는 터라 이걸 부쳐버렸더니 이놈의 가방을 어디다 흘렸는지 같이 나오질 못했습니다.
핸드폰이라도 빼 놓을걸.. 뎁따 후회하고..
결국 전화기 없이 하루 이틀 더 버티는데..
오늘 새벽 5시에 짐을 배달해 주더군요.. -_-+

현지에 있을 때 미국에서의 생활을 막 그리워한 것은 아니었는데..
오늘 새벽엔 갑자기 그런 기분이 들더군요.. -시차적응을 못해서인지.. 초저녁엔 졸려서 헤메고 새벽이면 번쩍번쩍 깹니다.. 
내 집, 내 방, 내 침대.. 참 아늑하구나..
폭신한 내 이불.. 필요한 모든 것이 손만 뻗치면 닿는 이 편안함.
나에게 익숙한 공간과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참 행복하구나..
이제 가방 찾고 전화기까지 쓸 수 있으니 완전히 일상으로 복귀한 셈입니다. ^^

선교지에 다녀오고 나면 언제나 몸과 마음이 새롭게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기분이 듭니다.
특히 이번 이라크 선교는 저에게 많은 사람들을 연결해 주고, 많은 것을 보게 하였습니다.
돌아온 지 이틀 되었는데 아직도 부푼 가슴은  잘 진정 되지 않고..
앞으로 삶의 방향과 미래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듭니다.

저는 매우 건강하게, 그리고 기쁨과 위로를 가득 안고 돌아왔습니다.
떠나 있는 시간 동안 함께 기도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제게 커다란 힘이 되었답니다.
매 순간 순간.. 여러분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느꼈으니까요..

앞으로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이 더욱 기대됩니다.
이번 여행 기간엔 너무 엄청난 일이 많아서 어디부터 말을 꺼내야할 지…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 뿐입니다.
모든 일들이 상상을 초월하게 순적하고 평탄하게 진행되었으니까요..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에..
언제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던 분들을 잃어버렸으니 이 막막한 세상을 어찌 살까 싶었는데..
이번 선교 여행 땐 전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기도를 받게 하셨고..
우리의 모든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고 모든 것에 기쁨이 넘칩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신령한 위로와 기쁨은 이 땅의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