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 사랑이라고 하는데.. 때로는 꼬맹이들의 맹목적인 사랑에 내가 더 고맙기도 하다. 성숙언니 말을 들으니 꼬맹이들이 한나이모 언제 오냐고 묻더란다. 두밤 자면 온다고 말해 주었더니, 지안이가 그 길로 두 번 자겠다고 방으로 가는데 이안이는 좀 더 컸다고 그렇게 두 번 자서 될 일이 아닌 걸 아는거다. 방으로 가는 지안이를 황당해 하며 그게 아니라고 했다는데 이제 겨우 3살, 4살인 애들이 노는 것이 어찌나 귀여운지.. 그 얘기 듣곤 엄청 웃었다.
Archive for July, 2006
이쁜 꼬맹이들..
Friday, July 28th, 2006복장
Friday, July 28th, 2006치마와 바지는 동시에 입어야 합니다. … 그 바지 길이는 발목이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치마 아래에 바지를 입는 것이 아프간 복장입니다. 이럴 때 치마 길이는 무릎선 정도 와야 활동하시는데 어려움이 없어요.) 스카프도 머리만 가리는 것이 아니라, 스카프로 가렸을 때 가슴 선까지 덮을 수 있는 여유 있는 길이의 사이즈여야 합니다… 윗옷은 몸매가 드러나면 안됩니다!! 윗옷 길이는 허리선, 힙을 덮거나 무릎까지 내려와도 좋아요. 그러나 어떤 길이든 몸매가 드러나서는 안됩니다. 비치는 옷은 안됩니다. 선글라스, 모자 사용 가능합니다.. – 자매복장 공지 중
다행이.. 대학 다닐 때부터 인도, 중동에서 온 친구들을 많이 봐서 이들 복장은 낯설지 않다. 그런데 정작 준비를 하려니 음.. 잠시 난감.. 인도 그로세리 주변을 돌다가 파키스탄 아줌마가 운영하는 부티크(?) 발견. 아줌마는 내가 동양인이라는 자체에 일단 호감. 게다가 파키스탄 옆나라 아프간을 간다니 매우 신기해하고 좋아하심. 남편은 어딨냐고 물어보심. 아줌마, 저 싱글인데요. ^^; 아프간은 남자 에스코트 없이 여자 혼자 다니면 불법. 가면 팀이 있으니까 괜찮을걸요. 도대체 옷들에 price tag가 없넹. 얼마 정도 하나요? budget이 얼마냐고 물어보심. 맞춰주겠다고 하심? $20불선에서 없냐고? 아줌마 흥분하심. 그건 너무 싸. 하지만 아줌마 선심 쓰기로 하심. $30짜리 3- piece(스카프, 무릎까지 내려오는 상의, 통바지) 전통의상을 특별히 $20에 주겠다고 하심. 통바지를 조이는 끈까지 덤으로.. 미국에서 물건값 깎기와 덤이 통하다니 은근히 공감대 형성. 아줌마, 잘 다녀올게요~ 언제 떠나냐고 물어보심. 담 주 목요일에요. 그럼 그 전에 새 물건 들어오면 한 번 더 보고 가라고 하심. 헤헤~
집에 와서 아래 위 다 챙겨 입고 스카프까지 두르니 이건 영락없는 현지인. 그런데 에어컨 돌아가는 집에서도 땀이 남. 조금 걱정.. 전통의상 말고 내가 가진 옷 중에서 비슷하게 맞춰볼 수 있는게 없나 찾다가 다양한 조합을 발견. 옷 걱정 해결. 입어보고 노는 중에 이런 식의 복장이 매우 편하고 예쁘다는 생각을 하게 됨. 그리고 왠지 매우 익숙함. 생각해 보니 고딩 때 교실에서 교복 치마 밑에 체육복 바지를 받쳐 입던 아름다운 추억이 떠오름. 맞아. 그때도 바로 이 스탈이었어. 어쩐지 금방 적응되더라니..ㅎㅎ
뽀대보다 실속
Thursday, July 27th, 20067월 30일이 되면 보조금을 받고(up to $100) 휴대폰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사람들은 휴대폰 제조업체에서 일하면 전화기 공짜로 주는 줄 아는데.. 음.. 나에겐 해당사항 없다.
어떤 폰으로 다시 2년을 버틸까 고민하다가 아래 두 개 모델로 선택 범위를 좁혔고 각 모델의 스펙과 사용기를 비교하여 A930이 낫겠다고 결정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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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sung SCH-a930 |
Motorola RAZR V3m |
SCH-a930 review: infosync, mobiledia
RAZR V3m review: infosync, mobiledia
보조금이 지급되면 둘 다 추가 비용은 없고, 1.3메가픽셀(이보다 많아봐야 부담스러울 뿐) 카메라, WMA 뮤직 플레이, 외장메모리(이게 젤루 맘에 든다.ㅎㅎ), 블루투스, EV-DO 등을 지원한다. 외형으로 보자면 슬림폰 대세를 따라 날씬쟁이 RAZR가 끌리지만, 카메라 기능(연속촬영, 플래쉬 등)이나 사운드 quality를 비교하면 A930 점수가 높고, 전에 Motorola RAZR와 Samsung BLADE를 비교한 NYT 기사 에서 RAZR의 소프트웨어 문제를 읽었던 터라, 비슷한 스펙이라면 삼성 폰이 좀 더 안정적이고 user-friendly할 거라고 생각한다. A930은 약간 Bulky한 외형이 아쉽지만, 휴대폰으로 해볼 수 있는 웬만한 멀티미디어 기능은 모두 제공(녹음, 녹화, 촬영, 재생)하고 메모리도 확장되니 기능 면에서 따로 아쉬운 것은 없다. 멀티플레이, 알뜰 지향 내 취향에 딱인 것 같다.
RAZR도 갖고 싶긴 했는데 이미 RAZR의 인기가 한바탕 휩쓴 후라 뒷북치는 모양새이기도 하고(앞으로 2년은 족히 쓸 것이다), 회사에서 전화 받기 멋쩍은 순간이 발생할 위험도 있다. 경쟁사 제품 아닌가.. -_-;
다음 주 목요일 전에 배송되면 아프간에 가져가서 녹음도 해보고 사진도 찍어보면 좋겠다.
그럼 A930으로 지르는거야!
I’m all set
Wednesday, July 26th, 2006음핫핫핫~ 음핫핫핫~
퇴근하는 길에 메일룸에 들렸는데 기다리던 우편물이 도착했다!! 나의 아프간 비자!!!!
2주만에 무사히 나왔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뱅기표도 지난 주에 받았으니, 아프간 입국에 필요한 모든 서류 준비는 끝났다. 하나님께서 모든 과정을 순적하게 이끌어 주셨다. 주님께서 내 소원을 들어주셔서 감사하고, 실타래 풀리듯 일이 술술 풀리니 주님이 도우신다는 확신이 들어 감사하다.
이제 가방을 잘 쌀 일이 남았다.. 가방은 배낭 하나여야 한다. 옷은 2벌 이상 가져오지 말랬고 머리를 감쌀 천과 발을 덮는 긴 치마를 구해야 한다. 아프간 사람들에게 선물로 나눠 줄 전통차를 조금 마련해야겠고, 얇은 침낭도 필요하다. 떨린다. 오옷!
전하는 자에게 주시는 능력
Tuesday, July 25th, 2006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막 16:15-18)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눅 10:17-20)
동생은 이제 이란을 경유해서 아프간으로 들어간다. 현경과 현우는 지금 유카탄에 있고..
먼저 간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이 말씀을 묵상한다.
전과
Monday, July 24th, 2006나는 아주 황당한 꿈을 가끔 꾼다.
꿈이란 원래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내 정신세계가 너무 독특한 건 아닐까 (^^;) 궁금하기도 하다. 더러는 정말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싶을 때도 있고, 꿈이라 정말 다행이었어.. 하고 가슴을 쓸게 되는 때도 있는데 후자의 경우로 특히 기억에 남는 꿈이 있다.
중학교 때 쯤이었나…. 꿈에서 내가 무슨 검은 옷을 입고 청부살인하는 조직의 멤버였는데 전에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고 했다. 난 꿈꾸는 내내 기억도 못하는 그일을 괴로워했는데 내가 아무리 작심하고 개과천선하여 착하게 살더라도 과거의 일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에 너무 마음이 눌렸다. 꿈에서 깼을 때 내가 조직의 멤버도 아니고, 무엇보다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날 얼마나 자유하게 했는지.. 너무 감사했다. 사람을 죽이지 않아서..
죄를 지었더라도 회개하고 용서받을 수 있고, 앞으로 죄를 짓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겠지만 그 때 그 꿈을 꾼 뒤에는 전과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자유한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꼭 내 맘대로 해보고 나서 후회할 필요 없다. 육체와 생각을 거스르는 일이 더 자유로운 일일 수 있겠다.. 뭐 그런 생각.. 그런데도 죄를 안짓기란 참 쉽지 않다. 꼭 저지르고 나서 후회하게 되니 말이다.
전과가 없으려면 착해서 죄를 짓지 않으면 되겠지만, 무능력하고 연약해서 전과가 없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어서 먼저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연약해서 침략만 받은 것일 수도 있고, 말하자면 차라리 가진게 없고 힘이 없어서 유혹을 덜 받는 경우도 있다는 거다. 점점 가진게 많아지고 힘이 세지니까 우리도 약한 사람들 무시하지 않는가… 그러니 약한 것도 은혜이다. 죄를 덜 짓고 더 자유할 수 있다.
이번 레바논 전쟁 기사를 보다보니 미 Condoleezza Rice 국무 장관이 중재를 위해 파견되었다고 하는데 사실 미국은 중재를 위해 적합한 입장이 되지 못한다. 편이 기울기 때문이다. 미국 만 아니라 서구의 많은 나라들이 이미 전과가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오랜 세월을 변방의 구석에서 조용히 살다보니 서방이든 중동이든 우리가 이들 역사에 개입하여 꼬투리 잡힐 일이 별로 없다. 내 생각엔 한국 사람들이 중재에 적합할 것 같다. ㅎㅎ 그래야 공평하지 않은가?
이유야 어찌되었든 전과없는 한민족, 하나님께서 중동과 서방의 깊은 골을 메우고 양자를 대신해서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견없이 전할 수 있는 통로로 사용하고 계신다. 2년 전에 팔레스타인에 갔을 때 그들이 태극기 흔들며 우리를 반기던 것을 잊을 수 없다. 그들은 무슬림이었고 우리가 기독교인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우리 얼굴 노란 코리안을 너무 좋아했고 ’21세기 중동판 게토’에 갇혀 살면서 우리가 자기들을 찾아 온 것에 마음을 그냥 열어버렸다. 인지상정인 것이다. 그들도 전쟁이 싫고 총소리에 질린 사람들이었다. 사람이 좋고, 사랑받고 싶은 사람들.. 하나님은 그들의 중보자로 우리를 사용하셨다.
이번 아프가니스탄도 다르지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에궁.. 우리가 안가면 누가 가나? 전과범 미국이 가나? 영국이 가나? 우리가 가야지~ ㅎㅎ
변방
Saturday, July 22nd, 2006어제 글을 쓴 것이 Hezbollah나 알카에다를 옹호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둘 다 잘못했는데 맨날 한놈만 나쁜놈되고, 설사 그놈만 나쁜놈이라고 쳐도 그 놈 혼내려다 죽고 다치는 건 언제나 무고한 사람들(민간인)인 것이 슬퍼서 조금 흥분했던 것 같다.
어제 MTBC technical luncheon에서 Jeff Wacker라는 분이 “Searching For The Next Big Thing In Information Technology”라는 주제로 강의하는 것을 들으러 갔는데 중간에 Friedman의 "The World is Flat" 얘기가 나와서 괜히 그이의 NYT칼럼까지 오버랩되며 이래저래 머리가 복잡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타이틀이 멋져서 Irving까지 갔는데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내용은 심심했다.
오늘 몸이 좀 안좋아 집에서 쉬면서 "세계화와 그 불만"(Globalization And Its Discontents – Joseph Stiglitz 저)이라는 책을 봤다. 내가 막연히 알고 있던 ‘세계화’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짚어 주었다. 세계화와 자유 무역은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투명성과 공정성이 완전히 보장된 시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세계화가 원래 취지대로 작동하려면 가장 근본적으로 지배구조의 변화가 필요한데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히고 불완전하고 이기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모두가 만족하는 변화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물론 책에서는 어렵겠지만 가능한 해법들을 제시해 주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댓가를 치러야하는 길을 따르기 보단 Friedman이 제시하는 환상에 남기를 더 좋아한다. 세계화가 모두에게 저절로 번영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Stiglitz처럼 똑똑하면서도 인간애를 잃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볼 수 있을 것도 같지만, 그 일의 성공을 논외로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점점 어두워지는 세상에 완전한 해결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작은 노력을 하려고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주님이 오셔야 한다고 믿는다.
책에 나오는 수많은 개발도상국 나라들의 어려운 상황을 읽으며 일주일 중 적어도 하루를 노동에 대한 아무 부담 없이 마음대로 쉬며 책을 볼 수 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통계적 연구나 이념이 세상을 한치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생각도 했다.
우리 본부장님이 맨날 세상을 변화시키려거든 변방으로 가라고 외치시는데 역시 중심에선 시스템의 노예가 될 뿐이다. 우리 주님의 마음은 중심이 아닌 변방에 있고, 나는 그래서 아프가니스탄엘 간다. 그들과 부대끼며 그들과 함께 울고 웃을 것이고 변방을 향한 주님의 마음을 전할 것이다. 변방에서 일하시는 주님이 너무 좋다. 약한자를 일으켜 강한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주님이 너무 멋지다. 변방으로 가자, 변방으로 가자. 중심에서 오염되지 말고 변방에서 정직한 눈을 뜨자.
시간이 되면 읽으려는 글
- "The world is Flat" 리뷰 by Edward Leamer
어지러운 세상
Friday, July 21st, 2006지난 12일 Hezbollah(wiki)가 레바논과 이스라엘 경계지역에서 이스라엘 군사 2명을 인질로 잡은 것이 발단이 되어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이 이어졌고 레바논 지역에 수백명의 사상자와 부상자를 낳고 있다.
중동 분쟁에 대한 미국 사람들의 반응은 아주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스라엘 편을 들어주기 마련이다. 그것이 미국이 기독교에 뿌리 내린 국가라서 구약의 선택받은 민족 이스라엘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든, 미국 경제와 언론을 장악한 유태인의 영향력 아래 묶여있기 때문이든 이스라엘은 ‘우리의 친구’라고 말하면서 중동 사람들은 ‘테러리스트’라고 매도한다.
이번 이슈와 관계해서 이글 저글을 읽다가 전에 "The World is Flat"이라는 책 때문에 알게 된 Thomas Friedman의 NYT칼럼도 보게 되었는데.. 역시 이번에도 공감할 수가 없었다. 내가 전에도 이분 참 naive하시고 optimistic한 양반이네 하고 생각했는데 이제 이분 글을 보면 내 생각과 반대 의견을 정리하는 지표가 된다. 기회가 되면 자세히 얘기하기로 하고..
사람은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다. 절대적으로 악하기만 한 사람도 없고 또 착하기만 한 사람도 없다. 중동 사람들이 왜 저렇게 ‘테러’ 같은 일을 벌이나.. 가만있는데 그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말 누구의 말처럼 그들이 미쳐서, 원래 뼈 속까지 악에 물든 사람이어서, 전쟁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미친듯이 행동할 수 밖에 없을 만큼 너무 많이 상처받았고 너무 많이 당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지 않는가.. Hezbollah이든 알카에다이든 이란, 시리아의 문제이든.. 힘이 없기 때문에 이사람들 게릴라전 밖에, 테러 밖에 할 수가 없다. 안중근 의사를 우리가 보면 독립운동가이고 일본이 보면 테러리스트인 것처럼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테러 집단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아랍 내에서는 영웅이 된다. 그리고 이들을 핍박(?)하면 핍박할 수록 아랍 사람들은 더욱 열심히 칼을 갈게 될 것이다. 저 페르시아제국, 바벨론제국 후예의 높은 긍지를 어떻게 힘으로 꺾겠나.
어리석은 인생의 한계인 것이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을 뿐이고 전쟁은 또 다른 전쟁을 부른다. 정치로, 힘으로, 합리로 해결을 볼 수 없다. 어리석어 보이지만 용서하고 사랑하는 길 밖에 없는데.. 이게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십자가 없이는 해결이 안되는데.. 인생의 비밀이 말씀에 있는데 사람들은 너무 자신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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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잘되는 것 기뻐하기
Saturday, July 15th, 2006한두해 전인가.. 리더모임에서 새해 결심에 대해 돌아가며 얘길 했는데 그때 나는 사람 키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나를 밟고 다른 사람이 올라가는 것을 기쁘게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야 한다는 것, 누군가는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 늘 머릿 속에 담고 있지만 관찰자의 입장에서 옳다고 하는 것과 내 스스로 그렇게 사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고 늘 그렇듯이 말처럼 쉽지 않다.
남이 잘되는 것에 대한 4가지 반응
1. 남이 잘되는 걸 함께 기뻐하기 가장 쉬운 경우.
-> 그 사람이 잘 돼서 나한테 콩고물이 떨어질 때.
2. 남이 잘되는 걸 함께 기뻐하기 역시 쉬운 경우
-> 아예 남남이라 내 삶과 아무 관계 없을 때. 괜히 비교하여 상대적인 상실감을 느낄 이유가 없으며 좋은게 좋은 것임.
3. 남이 잘되는 걸 함께 기뻐하기 약간 어려운 경우
-> 그 사람과 내가 남남은 아니며 어떻게든 얽혀 있는데 내 덕에 – 희생까진 아니고 나는 내길을 갔을 뿐 – 남만 잘됐을 때, 또는 같은 노력을 하고 나만 빼고 모두 잘 됐을 경우. 약간 부럽기도 함.
예) Prom에서 선물추첨을 했는데 같은 상자에서 뽑은 A양도 당첨되고 B양도 당첨됐는데 나만 당첨되지 않았을 때 -_-b
4. 남이 잘되는 걸 함께 기뻐하기 아무래도 어려운 경우
-> 그 사람의 이해가 나와 상충할 때. 그 사람이 잘되기 위해 내가 희생해야 했을 때. 예) 조조의 아들이 더 큰 대의(천하통일?)를 위해 아버지를 살리고 자기가 대신 죽는다든지, 세례 요한이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하며 예수님이 끝장 인기날리던 시절 자기는 감옥에 있어야 할 때
모든 경우를 위의 4가지로 구분하자는 것은 아니며, 다루어야 할 변수는 너무나 많고, 특히 시간이 개입됐을 때 그것이 인연이든 운명이든 섭리든 어떤 희한한 모습으로 발전하여 전화위복, 새옹지마를 거쳐 내 삶과 남의 삶에 영향을 줄 지 모르므로 좋은 일도 나쁜일도 어느 시점에서의 일이 되고 우리가 이해/예측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얘기일 것이다. 게다가 잘되고 잘못된다는 것이 개인마다 기준이 달라서.. 도무지 나는 ‘정의(定義 definition)’ 따위를 내릴 수가 없다. 인생은 내겐 너무 어렵고 복잡하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대충 선이라도 그어 놓고 이야길 시작해야겠기에 그렇다 치고 넘어가면 내가 고민하는 건 4번이다. 공동체를 위해서 나를 희생할 수 있느냐. 나는 공기처럼 사라지고 다른 사람을 세워 줄 수 있느냐, 나를 밟고 가는 이에게 사뿐히 즈려 밟고 가라고 눈물 참고 미소를 날릴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필요한 건 2가지 정도다. 하나는 공동체의 목표가 내 안에 확실해야 하고, 또 하나는 내 안에 은혜가 있어야 한다. 목표만 가지고 일을 하면 기름칠 하지 않고 돌아가는 기계처럼 끽끽 거리고 뜻을 이루더라도 스스로 상하고 만다. burn out.. 목표없이 은혜만 있다고 하면 여기가 좋사오니~ 하며 아무데나 안주하게 된다. 공동체의 목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가이드 라인이 있기 때문에 일정선을 유지하는 반면, 나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 항상 은혜 가운데 머무느냐 하는 것이다. 내 가슴을 촉촉하게 적시는 은혜는 옆에서 오지 않고 위로부터 온다. 그런데 한눈을 자꾸 팔다보니 위로부터 오는 은혜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위로부터 오는 은혜가 있으면 희생 같은 것은 의미가 없다. 이미 희생이 희생이 아니다. 남이 잘되라고 가장 많이 노력했다고 해도 그 사람의 기쁨이 내 기쁨이다. 남을 위해 애쓰는 것이 어려울 때는 은혜 대신 섭섭한 마음이 들어갔을 때이다. 이 섭섭한 마음은 나를 희생하게 한 상대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 이 역시 위를 향하는 반발인데.. 이렇게 되면 참 힘들다.
내가 떨쳐버리려고 정말 애쓰는 감정 중 하나가 자기연민이다. 반복적으로 내가 짊어지게 되는 어려운 일들.. 솔직히 피하고 싶다. 이런 일들이 더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힘들다. 내가 제일 힘든 것도 아니고 나만 힘든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내가 왜? 나만 왜? 하고 자아가 고개를 드니까 자기연민이 생긴다.
이번에도 싫은 일, 어려운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나에게 무얼 배우게 하시나 봤더니 하나님을 신뢰하는 훈련을 하게 하신다는 생각이 든다. 얼굴 한번 본 적없는 저 중앙아시아 땅에 가기 위해 내 모든 휴가를 털고 비용을 감수하는 것은 오히려 매우 쉬운 일이다. 목표도 확실하고 은혜도 넘친다. 그런데 내 가까이 있는 사람들.. 가족들.. 그들로 인해 어떤 수고를 하는 것은 더 어렵다. 사실 그건 내가 그들에겐 ‘기대치’-가 있어서이기도 하고 그들에겐 내 이기심이 여과없이 작용하는 탓이기도 하다. 내 안에 선한 것이 없다. 착한 마음을 품게 되고 어려운 일을 겪더라도 마음이 메마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나님, 나에게 은혜를 부어 주십시오. 넉넉한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 주십시오. 믿음을 잃지 않게 해 주십시오.
남이 잘되는 걸 정말 기뻐하려면.. 그 사람이 더 이상 남이 아니어야 한다. 남일 기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 사람 일이 내 일이고 그 사람이 잘되면 내 일로 기쁜 것이다. 정말 밸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ㅠ.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