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쌀라말레이쿰!
2002년 봄 비전스쿨 첫 강의 시간에 우즈베키스탄 선교사님에게 배운 인사말이다. “당신에게 평화가 함께 하길”이란 뜻으로 중동, 중앙아시아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16억 무슬림 형제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한다. 우리로 치면 “안녕하세요” 쯤 되겠지만 전쟁과 배고픔의 기억을 상실한 요즘, 안녕을 묻는 인사란 그저 형식일 때가 많다. 그러나 연일 뉴스의 헤드라인으로 등장하며 분쟁지역으로 낙인된 저 중동 땅에서의 평화란 여전히 요원한 과제요, 절박한 소원이다. 그래서인지 무슬림 형제들이 “아쌀라말레이쿰” 하며 악수하고 포옹하는 것을 보면 뭔가 뭉클한 것이 느껴진다.
단기 선교로 팔레스타인과 오만에 갔을 때 만나는 사람마다 “아쌀라말레이쿰”하고 크게 인사했다. 진정한 평화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을 알게 되길 바라며 진심으로 평화를 빌었다. 처음보는 외국인의 인사를 피하거나 불쾌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곧 이어 얼굴 가득 웃음을 담은 답례 인사가 되돌아 오기 마련이다. “말레이쿰 아쌀람!”
서방 세계에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힌 것을 슬퍼하고, 억울한 것이 많아도 다 하소연할 데 없는 제3세계 사람들이지만, 정 많고 예의 바르며 시와 문학을 사랑하는 멋진 사람들. 한번 만나면 아는 사람, 두번 만나면 생명을 바꿀 수 있는 친구, 세번 만나면 피를 나눈 가족이라는 자신들 속담대로 이방인을 환대하고 오늘 굶어도 손님을 대접하는 넉넉한 사람들.
“주님, 왜 이렇게 착한 민족이 복음에 가리웠습니까? 자비의 하나님께서 왜 이들의 아픔을 오래토록 외면하십니까?” 차라리 주님을 원망할 수 있는 일이라면 좋겠다. 하지만 슬프게도 주님의 팔이 짧아 저들을 구원하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불순종 때문에 저들이 고통받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 무슬림 형제들이 어둠 가운데 사는 것은 주님의 말씀대로 복음을 전하지 않은 우리에게 원천적 책임이 있다.
세계 교회는 과거 2천년 동안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마28:19)” 고 말씀하신 지상명령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선교란 마치 선택된 소수의 책임으로, ‘모든 족속’이란 말은 비유나 과장인 것으로 오해하였다. 때로 선교사를 보내달라는 직접적인 요청도 있었지만, 그들이 이교도이기 때문에 진주같은 복음을 개, 돼지에게 줄 수 없다며 거절하기도 하였다. 2백년 간의 피비린내 나는 십자군 전쟁은 종교적 명분을 팔아 교권의 정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한 결과였고, 그로 인해 이슬람권에선 아직도 기독교에 대한 오해와 반감의 골이 깊다. 과거 오스만 제국의 터 위에 세워진 투르크 나라 터키는 십자군 전쟁에서 흘린 조상들의 피를 기억하기 위해 국기 자체가 붉은 색일 정도니 말이다.
2000년도 코스타에서 중단기 선교 헌신을 하고 아마존으로 단기 선교를 다녀 온 뒤에도 의무감이나 책임 이상으로 선교를 대하지 못했던 내가, 모든 민족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을 발견한 것은 인터콥 비전스쿨을 통해서였다. 선교란 어느 특정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감당하는 것이며 아직까지 복음을 듣지 못한 6천여 미전도 종족이 어디에 흩어져 있는지, 그 중 90% 이상을 차지하는 무슬림 형제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배우게 되었다. 비전 스쿨을 마치면 Field Operation이라는 단기 선교에 참가하게 되는데 현지를 다녀올 때마다 아랍에 대한 사랑을 계속적으로 부어주셔서 지금은 그 땅의 민족들을 품게 되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는 조선시대 한 문인의 말처럼 이제는 뉴스를 보더라도 중동 이야기가 나오면 촉각을 세우게 되고 월마트에 가서 스카프를 쓴 여인을 보면 말을 걸고 싶어진다. 샤와르마 (양고기와 샐러드를 넣은 중동식 빵)가 너무 먹고 싶어 팔레스타인 레스토랑을 찾아가고 Thank you라고 할 일도 슈크란(아랍어로 고맙습니다) 한다. 주님께서 그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니 그 민족을 알고 싶고, 하나 둘 배워갈 수록 그 민족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어릴 때 다니던 교회에 선교사님이 오셔서 간증을 듣는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선교지를 가라고 하시면 무척 부담될 것 같아 두려운 적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기쁜 마음을 주시지 않았으니 당연히 나는 아닐거라고 안도하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선교가 가장 즐겁고 재미난 일이며 최고의 영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니 과연 하나님의 은혜이다.
십자가의 능력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경험하는 데서 나온다고 믿는다. 죽어야 부활을 할 텐데, 누구도 죽기를 원하지 않으니 부활의 경험을 하지 못한다. 우리는 때때로 자의적인 섬김을 통해 수고를 잊을 만한 기쁨이 부어지는 것을 알고 있다. 하물며 나의 기도와 땀방울로 잃어버린 영혼이 돌아올 때이랴. 대단한 것처럼 말하는 것 같아 두렵지만, 선교란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해야 하는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점심 한끼 굶고 정기적으로 한 선교사님을 위해 기도하는 일일 수도 있고 비전스쿨 훈련을 받고 단기선교를 나가는 일이 될 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 직접 선교사가 되는 것일 수도 있다. 무엇을 하든지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선교사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열방을 품고 그들의 갈라진 틈에 서서 중보하는 자가 되는 삶.
이렇게 얘길 하는 나 자신도 평범한 회사원으로 한 선교단체를 섬기고 있을 뿐이다. 대단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맡겨 주신 작은일. 그리고 언젠가 중동지역 선교사가 되어 나갈 꿈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내게 능력주신 자 안에서 능치 못함이 없다”는 말씀을 믿는다면 나의 부족함 때문에 발목을 붙잡히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 자신의 한계와 불완전함이야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나아질 가능성도 별로 없지만 결국 선교는 주님이 하신다. 부족한 우리를 사용하셔서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시는데 순종 이상의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견고한 이슬람의 영을 생각하고 십수억 무슬림 인구를 생각하면 세계 선교 언제 완성되나 아득할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고 나갈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전세계 2만4천여 종족 가운데 미전도종족의 수는 1989년 1만1천개에서 2001년 8천개, 2005년 다시 6천개로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이제 남은 ¼ 종족을 섬기기 위해 핍박 속에 성장한 시님(중국)의 백만 선교사, 한국인 십만 선교사를 일으키는 것이 우리의 구체적인 기도이다. 흔히들 지금이 선교의 마지막 시대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글로벌 프로젝트의 대미를 바로 우리가 감당하는 것이다.
주님, 우리의 믿음을 일으켜 주옵소서. 열방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 가운데 부어 주셔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섬기게 하옵소서. 땅끝까지 예배자를 찾으시는 아버지의 소원, 우리의 손과 발을 통해 이뤄지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