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October, 2006

기고 061025

Monday, October 30th, 2006

아쌀라말레이쿰! 

2002년 봄 비전스쿨 첫 강의 시간에 우즈베키스탄 선교사님에게 배운 인사말이다. “당신에게 평화가 함께 하길”이란 뜻으로 중동, 중앙아시아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16억 무슬림 형제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한다. 우리로 치면 “안녕하세요” 쯤 되겠지만 전쟁과 배고픔의 기억을 상실한 요즘, 안녕을 묻는 인사란 그저 형식일 때가 많다. 그러나 연일 뉴스의 헤드라인으로 등장하며 분쟁지역으로 낙인된 저 중동 땅에서의 평화란 여전히 요원한 과제요, 절박한 소원이다. 그래서인지 무슬림 형제들이 “아쌀라말레이쿰” 하며 악수하고 포옹하는 것을 보면 뭔가 뭉클한 것이 느껴진다. 

단기 선교로 팔레스타인과 오만에 갔을 때 만나는 사람마다 “아쌀라말레이쿰”하고 크게  인사했다. 진정한 평화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을 알게 되길 바라며 진심으로 평화를 빌었다. 처음보는 외국인의 인사를 피하거나 불쾌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곧 이어 얼굴 가득 웃음을 담은 답례 인사가 되돌아 오기 마련이다. “말레이쿰 아쌀람!” 

서방 세계에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힌 것을 슬퍼하고, 억울한 것이 많아도 다 하소연할 데 없는 제3세계 사람들이지만, 정 많고 예의 바르며 시와 문학을 사랑하는 멋진 사람들. 한번 만나면 아는 사람, 두번 만나면 생명을 바꿀 수 있는 친구, 세번 만나면 피를 나눈 가족이라는 자신들 속담대로 이방인을 환대하고 오늘 굶어도 손님을 대접하는 넉넉한 사람들. 

“주님, 왜 이렇게 착한 민족이 복음에 가리웠습니까? 자비의 하나님께서 왜 이들의 아픔을 오래토록 외면하십니까?” 차라리 주님을 원망할 수 있는 일이라면 좋겠다. 하지만 슬프게도 주님의 팔이 짧아 저들을 구원하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불순종 때문에 저들이 고통받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 무슬림 형제들이 어둠 가운데 사는 것은 주님의 말씀대로 복음을 전하지 않은 우리에게 원천적 책임이 있다. 

세계 교회는 과거 2천년 동안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마28:19)” 고 말씀하신 지상명령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선교란 마치 선택된 소수의 책임으로, ‘모든 족속’이란 말은 비유나 과장인 것으로 오해하였다. 때로 선교사를 보내달라는 직접적인 요청도 있었지만, 그들이 이교도이기 때문에 진주같은 복음을 개, 돼지에게 줄 수 없다며 거절하기도 하였다. 2백년 간의 피비린내 나는 십자군 전쟁은 종교적 명분을 팔아 교권의 정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한 결과였고, 그로 인해 이슬람권에선 아직도 기독교에 대한 오해와 반감의 골이 깊다. 과거 오스만 제국의 터 위에 세워진 투르크 나라 터키는 십자군 전쟁에서 흘린 조상들의 피를 기억하기 위해 국기 자체가 붉은 색일 정도니 말이다. 

2000년도 코스타에서 중단기 선교 헌신을 하고 아마존으로 단기 선교를 다녀 온 뒤에도 의무감이나 책임 이상으로 선교를 대하지 못했던 내가, 모든 민족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을 발견한 것은 인터콥 비전스쿨을 통해서였다. 선교란 어느 특정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감당하는 것이며 아직까지 복음을 듣지 못한 6천여 미전도 종족이 어디에 흩어져 있는지, 그 중 90% 이상을 차지하는 무슬림 형제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배우게 되었다. 비전 스쿨을 마치면 Field Operation이라는 단기 선교에 참가하게 되는데 현지를 다녀올 때마다 아랍에 대한 사랑을 계속적으로 부어주셔서 지금은 그 땅의 민족들을 품게 되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는 조선시대 한 문인의 말처럼 이제는 뉴스를 보더라도 중동 이야기가 나오면 촉각을 세우게 되고 월마트에 가서 스카프를 쓴 여인을 보면 말을 걸고 싶어진다. 샤와르마 (양고기와 샐러드를 넣은 중동식 빵)가 너무 먹고 싶어 팔레스타인 레스토랑을 찾아가고 Thank you라고 할 일도 슈크란(아랍어로 고맙습니다) 한다. 주님께서 그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니 그 민족을 알고 싶고, 하나 둘 배워갈 수록 그 민족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어릴 때 다니던 교회에 선교사님이 오셔서 간증을 듣는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선교지를 가라고 하시면 무척 부담될 것 같아 두려운 적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기쁜  마음을 주시지 않았으니 당연히 나는 아닐거라고 안도하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선교가 가장 즐겁고 재미난 일이며 최고의 영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니 과연 하나님의 은혜이다. 

십자가의 능력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경험하는 데서 나온다고 믿는다. 죽어야 부활을 할 텐데, 누구도 죽기를 원하지 않으니 부활의 경험을 하지 못한다. 우리는 때때로 자의적인 섬김을 통해 수고를 잊을 만한 기쁨이 부어지는 것을 알고 있다. 하물며 나의 기도와 땀방울로 잃어버린 영혼이 돌아올 때이랴. 대단한 것처럼 말하는 것 같아 두렵지만, 선교란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해야 하는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점심 한끼 굶고 정기적으로 한 선교사님을 위해 기도하는 일일 수도 있고 비전스쿨 훈련을 받고 단기선교를 나가는 일이 될 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 직접 선교사가 되는 것일 수도 있다. 무엇을 하든지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선교사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열방을 품고 그들의 갈라진 틈에 서서 중보하는 자가 되는 삶. 

이렇게 얘길 하는 나 자신도 평범한 회사원으로 한 선교단체를 섬기고 있을 뿐이다. 대단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맡겨 주신 작은일. 그리고 언젠가 중동지역 선교사가 되어 나갈 꿈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내게 능력주신 자 안에서 능치 못함이 없다”는 말씀을 믿는다면 나의 부족함 때문에 발목을 붙잡히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 자신의 한계와 불완전함이야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나아질 가능성도 별로 없지만 결국 선교는 주님이 하신다. 부족한 우리를 사용하셔서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시는데 순종 이상의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견고한 이슬람의 영을 생각하고 십수억 무슬림 인구를 생각하면 세계 선교 언제 완성되나 아득할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고 나갈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전세계 2만4천여 종족 가운데 미전도종족의 수는 1989년 1만1천개에서 2001년 8천개, 2005년 다시 6천개로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이제 남은 ¼ 종족을 섬기기 위해 핍박 속에 성장한 시님(중국)의 백만 선교사, 한국인 십만 선교사를 일으키는 것이 우리의 구체적인 기도이다. 흔히들 지금이 선교의 마지막 시대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글로벌 프로젝트의 대미를 바로 우리가 감당하는 것이다. 

주님, 우리의 믿음을 일으켜 주옵소서. 열방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 가운데 부어 주셔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섬기게 하옵소서. 땅끝까지 예배자를 찾으시는 아버지의 소원, 우리의 손과 발을 통해 이뤄지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Digital Hollywood Fall

Monday, October 23rd, 2006

October 23-26, 2006

Digital Hollywood Fall 컨퍼런스 참석.


Race for the cure

Saturday, October 21st, 2006

오늘 아침에 Race for the Cure 이벤트에 참가하고 왔다.  매우 뜻깊은 경험이었다.  재밌기도 했고.  2만 명 가까이 되는 군중이 함께 움직이다보니, competitive run을 신청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팀에서 "뛰기"는 좀 어려웠다.  빠르게 "걷기"라고나 할까 ^^;; 어른들 손잡고 나온 아이들, 강아지들까지 함께 행진하며, 대단한 축제였다.

달리기 코스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박수 쳐주고, 어느 학교 옆을 지나 가니 그 학교 치어리더들이 나와서 응원하고, 길거리에 밴드들이 연주하고 하늘에서는 헬리콥터들이 촬영하고… 난 달라스에서 이렇게 사람 많이 모인거 처음 봤다 ^^  Target, Albertson’s, 각종 스폰서 업체들이 나와서 빵, 과자, 음료수, 과일을 나눠주고, 그 외에도 재밌는 기념품이 많았다. 

어제 선교사님과 비전 훈련생들과 새벽까지 있다 경기에 나가서.. 좀 피곤했는데, 그래도 땀을 흘리니 몸이 풀린다. 전체적인 분위기도 한껏 고조되어 덩달아 신나하며 하이퍼되기도 했고..  5k 걸어 보니 half 마라톤 감이 좀 잡힌다. 그래.. 오늘 뛴거 4배인거지.. -_-;; 내가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던건 아닌가 좀 걱정도 되지만 한편 무척 기대가 됨.

PayPal Alumni

Tuesday, October 17th, 2006

오후에 차장님께서 뉴욕타임즈에 실린 요 그림을 보여주시며 감탄하시길래 띡 보니 며칠 전에 비슷한 얘기를 읽은 기억이 났다.  프린트까지 해서 봤는데 어디서 찾은 건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도움 안되는 기억은 포기하고 각 종 뉴스, 읽었던 피드, 구글 검색.. 다 뒤졌는데 안나온다. 아. 정말 답답하다.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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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gle이 YouTube을 인수한 내용을 가지고 "Google acquires YouTube" 이런 평범한 제목부터  "THE GOOGLE YOUTUBE TANGO", "Google grabs YouTube in reach for Internet’s "holy grail"",  "Google’s Paris Hilton Movement: A $1.65 Billion Impulse Buy? – Pyramid Research"까지 별 제목의 기사가 쏟아진다.  일주일 이상 지났는데 여전히 시끄러운걸 보면 인수 금액부터가.. 사건은 사건인 모양이다.

중요한 포인트는 대략 3가지인 것 같다.

1) Google이 취약한 비디오/UCC기반 소셜네트워킹 사업을 강화하게 되었고,
     actively engaged eyeballs를 얻었다. Geek 뿐만 아니라 Teen과 일반 대중까지

2) 그래서 무한 가능성을 지닌 멀티미디어 검색 광고로 돈을 번다.

3) 그런나 YouTube을 휘청거리게 했던 DRM 이슈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Google은 각종 litigation의 attractive target 될 것인가?
     아님 이를 tactfully manage할 것인가?

YouTube 인수에 대해서는 워낙 읽을 거리가 많으니 관두고, 재밌는 건 이번 빅 뉴스 덕분에 덤으로 알게 된 PayPal 출신 벤처 사업가들의 활약이다.
 
PayPal에서 일하던 Steve Chen과 Chad Hurley가 파티에서 찍은 비디오를 친구들과 공유하기 위해 YouTube를 만들었다는 얘긴 알고 있었는데 그것 말고도 Linkedin(커리어 중심 소셜네트워킹 사이트), Slide(개인 이미지로 슬라이드쇼 만들고 공유하는 사이트) 등등에 PayPal 인맥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것은 이번에 알았다.

            1. Startups by Paypal former employees

Former PayPal employees have founded many high-profile companies, prompting Forbes to publish a news story on what it called "The PayPal Exodus." [15] Some of the ventures mentioned by Forbes include:

  • LinkedIn was founded by Reid Hoffman, a former VP at PayPal.
  • Palantir Technologies was founded by Nathan Gettings, who developed PayPal’s anti-fraud models. Palantir received funding from Peter Thiel.
  • Slide was founded by Max Levchin.
  • Yelp was founded by Jeremy Stoppelmann, former VP of Engineering at PayPal, and Russ Simmons, one of the first employees at PayPal. Yelp is funded by Max Levchin.
  • YouTube was founded by Chad Hurley, Steve Chen, and Jawed Karim, all of whom were early employees at PayPal. YouTube is funded by Sequoia Capital. Roelof Botha, the former CFO of PayPal, is a partner of Sequoia Capital who sits on YouTube’s board of directors.
  • World Ahead Publishing was founded by Eric M. Jackson, former marketing executive at PayPal and author of the book The PayPal Wars.
  • Room 9 Entertainment was founded by David O. Sacks, who founded PayPal’s Product Group and later served as Chief of Operations (COO).
  • SpaceX was founded by Elon Musk, who founded X.com and served as the CEO following its merger with PayPal.
  • HourTown was founded by Ryan Donahue, an early employee at PayPal.

             -  from Wikipedia

             2. 인맥 연결 그림NYTimes 기사

먼저 기사를 어디서 봤는지 꼭 찾고 싶어 미련스럽게 인터넷을 뒤지다보니, PayPal Exodus/PayPal Diaspora 라는 말도 나온다. ㅎㅎ 나는 디아스포라라는 말을 너무 좋아해서 이렇게 갖다 붙여도 또 재밌다. 

어쨌거나 돈을 많이 버는 얘긴 차치하더라도, 마음맞는 친구들과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그것을 실행해서 현실로 옮겨내는 그들이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16.5억불이라는 거액에, 다른 데도 아니고 Google에 넘겼으니 이런 대박이.. 이런 삭막한 얘긴 잠깐 내려놓고 내 주위에 나와 비전을 공유하고 같이 사고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가 있을까.. 다행히 얼른 한명이 떠오르긴 한다. 그리고 또 한명, 두명.. 내가 너무 엉뚱한 해석을 하는 건지 몰라도.. 내 또래일 Steve와 Chad를 보고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걍..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마라톤

Tuesday, October 17th, 2006

어제 선교보고 및 종족셀링 프리젠테이션을 하려고 벧엘교회에 갔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복민이 오빠를 만났다. 오빠가 NH로 공부하러 간게 99년이고 이듬해 코스타에서 잠깐 본게 마지막이니까 6년만의 재회인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시간에,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오빠네 부모님이 벧엘교회를 다니셔서 강의차, 홍보차 방문하면 인사드리고 오빠 소식도 듣곤 했다. 학교 졸업했다는 소식, 동부 어디로 이사갔다는 소식, 결혼했다는 소식..  전부 누군가에게 전해 들었다. 6년 동안 연락 한번 없는 것은 그렇다 치고 달라스에 한번씩 들리면서 얼굴 한번 안보여준 것은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흠흠.. 결국 우리가 오빠를 좋아했던 만큼 오빤 우리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야.. ㅠ.ㅜ  어린마음(?)에 얼마나 상처가 됐나 모른다. 하지만 괘씸하고 밉다면서도 잊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오빠는 우리의 영원한 Legend였고, 이십대 초반의 풋풋했던 그 시절 행복하고 즐거웠던 추억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오빠를 부정하면 우리의 아름다운 기억도 모두 사라지고 말거야.. 그래서 우리는 오빠를 그토록 씹으면서도 -_-;; 그리워하곤 하였다. 

오빠는 내 앞 줄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전혀 모르다가 광고시간이 돼서 목사님 소개로 일어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목사님께서 오빠를 소개시켜 주시고 곧이어 나를 소개시켜 주셨는데 우린 번갈아가며 깜짝 놀랐다. 예배 후 내 프리젠테이션 순서가 남아 있어서 긴장하고 있었는데 오빠를 보는 순간 완전 흥분해서리 예배 끝나기가 무섭게 감격의 상봉을 했다.  난 정말 뻥 하나도 안보태고 거의 울 뻔 했다.  난 오빠가 동부에 간 뒤로 변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오빤 하나도 달라진게 없었다.  내가 변했을까봐 걱정했다고 하니까  자기가 왜 변하냐고, 자기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6년이나 지났는데 많이 늙지도 않고 ^^;; 옛날이랑 똑같았다. 말투하며, 몸짓 하며.. 오빠도 나보고 똑같다 그러길래. 피~ 내가 살짝 삐진 척을 하니 외모는 많이 업그레이드 됐다고 (-_-;) 칭찬인 것 같기도 하고 기분 나빠야할 것 같기도 한 말을 했다.

오랫만에 만났어도 계속 같이 지낸 사람처럼 조금도 낯설지 않은 것이 참 신기했다.
참 고마웠다.  달라지지 않아서.
하나님께 감사했다. 큰 기쁨을 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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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청년부에 발을 디딘 것이 9년 전이다. (헐..) 내가 온 그 다음 주에 세미가 왔고..  7~8살 이상 차이나는 언니, 오빠 틈에서 우리는 무척 귀염을 받았다. 청년부에는 중간 나이대가 없어서, 그렇게 몇 년을 막내로 있었는데.. 집에서 첫째인 내가 그렇게 care 받는 것이 아마 처음이었을거다.

그때 청년부 회장이 복민이 오빠였다. 어린(? 그땐..) 우리 눈에 오빠는 교주였다. 오빠가 볼링치러 가자면 다 같이 볼링치러 가는 거였고, 오빠가 이 식당이 맛있다면 맛있는 거였다. 오빠가 떠난 뒤에 그만큼 좋아하고 따랐던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나도 곧 리더 역할을 해야 했고…  덕분에 오빠의 카리스마?와 리더쉽은 추억 속에 미화되고 마침내 전설이 되었다.  

내가 은근 정이 많아서 사람을 잘 못 잊는다. 그땐 어리기도 했고, 이민 온 지도 얼마 안돼 어리버리해서리 새로 누굴 사귀고 헤어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처음 울타리 밖으로 나와 친해진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날 때마다 울기도 많이 울고 오래 그리워하곤 했는데 그때 헤어진 사람들 나이가 지금 나보다 많았던 걸 생각하면.. 당사자들은 아마 조금 다른 마음이었을거다.  원래 떠나는 사람보다 남아있는 사람이 더 힘든 것도 있고, 이 나이엔 만날 때가 있으면 떠날 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만남에도 헤어짐에도 익숙한 나이가 됐다. 

내가 어떻게 그동안 연락을 한번도 안했느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나랑 세미랑 오빠를 얼마나 미워한 줄 아느냐, 우리는 오빠한테 정주고 마음주고 그랬는데 오빠는 우리를 아예 잊었던 것이냐며 마구마구 구박했더니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 한번도 잊은적이 없다며 구.라.를 친다. ㅎㅎ

에이.. 한번도 안 잊은건 거짓말이다. 
더 많이 그리워한 나도 오래 잊고 살았는데 한번도 안 잊긴..
왜 연락 안했냐고 했더니 연락처가 없었다고 변명을 한다. 이런 궁색한 변명을..
21세기 정보통신 사회에서 알려고 했으면 이멜 주소 알아내는게 일인가?
하지만 다 용서할 수 있었다. 너무 반가웠으니깐. 

나는 가물가물한 코스타에서 만났던 일도 기억해 주고 내가 잘 커서 자랑스럽다고 해서 쑥쓰럽고 기뻤다. 오빠가 웃으며 이젠 같이 늙어가는? 나이가 됐지만 그땐 너희들이 정말 어리고 귀여웠다 하고 나도 그 얘길 들으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그땐 그랬지..

근데 오빠는 나보다 한살 많은 언니랑 결혼을 했는데 이궁.. 도둑놈. ㅎㅎ
언니에게 물었다. "오빠가 어떻게 꼬셨어요?" ^^
그랬더니 26.2마일 마라톤을 완주하고 그 끝에 프로포즈를 했단다. 언니는 좀 더 로맨틱한걸 바랬다 그러고 오빠는 어떻게 그보다 더 로맨틱할 수 있냐고 흥분한다. 오빠는 일년에 한번씩 벌써 4번이나 마라톤을 뛰었는데 얼마 전에 캐나다에서도 뛰었었다며 기념 밴드를 보여줬다.

원래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아니 왜 하필 마라톤이야?’ 하고 물어보니..
‘마라톤을 한번 뛰고 나면 얼마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지 알아?’ 한다.
마라톤을 뛸 때 자신의 한계를 경험하면서 계속 주님을 구하고 자신을 내려놓는 훈련을 한다는 것이다. 일년에 한번씩 그렇게 하면서 머리에 찬 "똥"을 뽑아낸다고.. 오빠는 어떤 식으로든 삶에 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전히 멋지게 살고 있구나..
오빠 얘기를 듣고 결연한 표정이 되어 ‘나도 마라톤 뛰어야겠다’ 그러니까 언니가 웃으며 오빠가 정말 롤 모델이네 한다. ㅎㅎ

나는 오빠에게 한국에 가거든 꼭 비전스쿨을 들으라고 말해주었다. 난 비전스쿨 덕분에 역사관, 세계관, 인생관이 변했다고…  오빠가 꼭 듣겠다고 했다. 보스턴에서 울 본부장님 강의 몇 번 들었었다길래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라고 마구 마구 자랑을 했다.

암튼 우리는 주 안에서 진실로 사랑하는 형제, 자매이자 멋진 선후배이다. 오빠가 엔지니어로서 삶에 안주하지 않고 law school에 갔던 것처럼 나도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며 오빠가 간 길을 떠올린다.  나도 오빠처럼 열심히 살리라.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지만 그때도 오빠와 내가 여전히 순수함과 열정을 간직한 모습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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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회사에서 유방암 여성 치료를 위한 달리기 대회(2006 Komen Dallas Race for the Cure®) 홍보 이메일을 받았다. 달리기 대회 광고를 보니 복민이 오빠가 얘기한 마라톤이 생각나지 모야.. 회사에서 신청비를 지원한다길래 HR에 어떻게 Register 하냐고 메일을 보냈다. 이번주 토요일 아침에 뛰는 건데 너무 늦지 않았다면 참가해 보고 싶다.
이건 유방암 환자를 위해서라기보다 달리기 자체에 대한 동기가 작동했다고 봐야지..
뛰는 의도야 다르지만 그래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각난 김에 마라톤 대회를 알아보니 내가 전에 자전거 타던 whiterock lake 주변에서 마라톤 대회(42.195km, 26.2 마일) 및 절반 코스만 뛰는 half 마라톤 대회(21.0975㎞, 13.1 마일)가 있다.  아무리 non-competitive run으로 뛰더라도 26.2마일은 만만한 거리가 아니다.  경험도 없는 내가 초장부터 풀코스는 무리일 것 같아서 half 경기 참가 신청을 했다. 

내가 전에 – 뜻하지 않게 – 대략 12마일을 5시간 동안 걸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_-;; 13마일이면 해 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너무 운동을 안해서 몸이 엉망인데 건강을 위해서도 좋은 훈련이 될 것 같다.  갑자기 뛰면 안된다니 석주 정도 남은 기간 동안 몸을 잘 풀어줘야겠다. 달리기 훈련법부터 식이요법, 복장, 대회준비까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사이트도 있고 정보도 많다.

난 달리기가 세계에서 젤루 싫고 체육시간이 싫어서 고등학교 빨리 졸업하고 싶었던 사람인데 그런 내가 자원해서 달리기 대회를 신청하다니 참 웃음이 난다.  내가 순발력이 없어서 단거리는 약해도 지구력은 좀 있으니 마라톤은 오히려 가능할 듯… 

복민이 오빠 얘기처럼 내 안에 가득찬 더러운 생각, 오래 묵은 체증, 거짓과 가식을 모두 떨쳐버리고 다시 한번 바닥을 치는 경험이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왠지 마라톤을 뛰고 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의지도 다시 한번 불끈 솟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친절한 구글

Friday, October 6th, 2006

인터콥 미주지부 이메일을 구글 서버로 옮길 때 너무 소심했던 나머지 30개 계정만 신청했는데.. 금새 부족하게 되었다.
미주가 부흥하고 있으니 기뻐할 일이지만 초반에 너무 빠듯하게 잡은 것이 후회도 되고 늘어나는 지부를 어떻게 감당하나 고민 고민..

Help 페이지에서 방황하던 나는 이런 문구를 발견하고 냉큼 클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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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게도 한두 스탭을 거쳐 계정 추가 신청을 할 수 있었다. +50개 추가.

며칠 지나니까 승인됐다고 메일이 온다. 앗싸~

Google도 미주의 선교 부흥을 열심히 지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