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은
내 지난날 중 가장 고통스럽고.. 역설적이게도 가장 은혜가 넘친 해였다.
그해 4월에 대학 4년을 같이 다니고 오래 사귀었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난 내가 헤어질 것을 결정했고 그 사람과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도 늘 난데 내가 이별로 그렇게 고생을 할 줄은 미처 몰랐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잠이 많고 –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 127:2) – 입맛이 없어서 고민해 본 적이 없는데.. 그 때 처음으로 불면증과 거식증에 시달렸다.
처음 한 두 주는 심각했고, 시간이 가면서 밥은 먹었는데 불면증은 좀 오래 갔다. 서너달.. 매일 밤 재워달라고 기도하고 어렵게 잠이 들고도 새벽에 자주 깼다. 그래서 그때 내가 날씬했다. 몸무게가 파운드로 두자리 숫자로 떨어지더라. 그 힘든 중에도 살 빠지는 걸 즐기고 있는데(어머.. 오늘도 3파운드 빠졌어~~) 어느날 문득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보니 그렇게 앙상하고 초췌할 수가 없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살을 찌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이유는 그 사람과 내가 같은 길을 갈 수 없을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뭐 별로 흠잡을게 없는 좋은 사람이었다. 맨날 억지쓰고 떼쓰는 나를 잘 받아주었고 나보다 공부도 잘해서 유망했고 게으르고 덤벙대며 일벌리기만 좋아하는 내 옆에서 성실하고 한결같은 그가 많이 챙겼다. 교회에서도 같이 청년부를 섬겼는데 내가 사고치면 그는 수습하고 손발이 잘 맞았다. 문제는 난 일벌리는 쪽이 내가 아니길 바랬다. 그에게 리더쉽이 있길 바랬다. 그가 영적 리더쉽을 가지고 날 이끌어 주길 바랬고, 내가 사고치기 전에 그가 먼저 우리의 비전에 대해 말해 주길 바랬다. 난 그때 어렸고, 꿈이 많았고.. 지금도 그렇지만 그땐 더 현실감각 떨어진 이상주의자여서 내가 이게 하고 싶다 저게 하고 싶다.. 그런 얘길 하면.. 그는 맨날 이렇게 말했다. "한나가 아직 어려서 그래.. " 난 그말이 그렇게 듣기 싫었다. 그는 나보다 네살이 많았는데 나이가 든다고 내가 변할거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난 원래 꿈꾸는 걸 좋아하고.. 그 사람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 사람은 좋고 편안했지만 답답했다.
그 사람과 헤어질 생각을 하는 건 쉽지 않았다. 우리가 헤어질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난 사실 처음부터 그 사람과 내가 이런 면에서 맞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았지만.. 날 이만큼 좋아해주는 사람이 다시 없을 것 같았고 그러니 이 사랑에 만족하자는 소극적 선택을 한 것이다. 난 사랑에 자신이 없었고, 내가 좋다는 그가 고마웠다. 하지만 그 사람과의 미래를 꿈꾸는게 행복하진 않았다.
그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교제를 시작하기 전부터 난 계속 망설였고, 사귀는 중에도 이따금씩, 코스타를 혼자 다녀온 뒤에도 한차례 심각했었지만 그는 바로 바로 나를 잡았고 난 이미 우리의 관계가 학교, 집, 교회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 도무지 헤어질 방법은 없는게 아닌가 생각했었다.
마지막에 헤어지자고 했을 때…
나는 잔인한 말을 했고
그도 더는 나를 잡지 않았다.
그렇게 끝났다.
난 헤어진 후에 그에게 잘해주지 못했던 많은 일을 후회했다. 그리고 좋게 헤어지는게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그렇게 독하고 모진 말을 해댄 것엔 오래 후회하였다. 헤어지고 나서 그는 금방 내 친구 – 다행히 별로 친하지는 않은 – 와 교제를 시작했고 나는 배신감을 느끼며 오래 고통스러워 했다. 내가 그 사람에게 잘못한 많은 일들에 대해 벌을 받는 거라고 자책했다.
그 고통이 절정이던 5월 말 나는 청년부와 아마존 단기 선교를 가게 되어 있었다. 서광샘이 첫 사랑의 배신 후 하나님을 찾게 되었다고 했던가.. 나도 비슷했다. 내 주위에 아무도 의지할 데가 없었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숨도 못쉴 것 같았다. 밥을 먹으면 속이 울렁거리고 자면서도 울었다. 하지만 단기 선교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고 늘 사람들과 만나야했기 때문에 낮에는 헤어짐을 잘 극복하고 있는 척 유쾌하게 굴었고 – 심지어 그때 내가 너무 잘 지내서 나를 괘씸히 여긴 사람까지 있었으니 나의 포커 페이스가 심각한 수준이긴 했던 모양이다. – 혼자 있을 땐 이별을 곱씹으며 자학했다.
그런 상태로 아마존엘 갔다.
그것도 그의 새로운 그녀와 한 팀이 되어..
원래는 1주일 단기 일정이었다. 난 body worship과 아이들 여름성경학교를 맡았는데.. 잠도 제대로 못자고 춤추는 게 에너지를 많이 쓰는 일이라 체력도 딸렸다. 하지만 내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는데 온 동네 꼬마 아이들이 "아나, 아나"하고 따르며(포르투갈어로 첫 글자 H 발음은 묵음이다.) 매일 자기 장난감, 카드, 종이꽃을 수 없이 가져다 줬다. 앞에서 노래하고 율동하는 사람이 나 하나가 아니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다 주는 것도 내겐 더 크고 좋은 것으로 주었다. 난 거기서 속으로 많이 울었다. 내 마음이 많이 괴로운데.. 하나님께서 이 아이들을 통해 나에게 위로를 주시는 것 같았다. 난 그곳에 있는 동안 내 생각은 일절 안하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만 구하자는 결심으로 갔다. 섬기고 오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영혼들을 만나고 오자.. 그런데 뒤돌아 보니 그 곳에서의 1주일은 온전히 나 자신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시간이 되었다. 또 한번 서광샘의 말씀이 생각난다. "내가 주의 일하면 하나님은 나를 위로하신다." 그땐 그렇게 하루 하루가.. 숨 쉬는 것조차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면 살았다. 그의 새로운 그녀가 내 옆칸 그물 침대에서 자고 있는데 아무에게도 내가 얼마나 힘든지 말할 수 없었다. 하나님밖엔 기댈 곳도 소망도 없었다.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만 쳐다 봤다. 그 밀림의 찌는 날씨에 하루종일 아이들과 노래하고 춤추다 저녁이 되면 온 몸에 기운이 다 빠졌지만 그땐 그렇게 해야 살 것 같았다. 음식은 멧돼지와 원숭이 고기가 나오고 조미료 대신 개미를 말려 빻은 생선국이 나왔지만 나는 밥도 잘 먹었다. 끼니를 대충하면 쓰러질지도 몰랐기 때문에 비위에 거슬리는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고 또 인디오 사람들이 우리를 대접하고 우리가 먹는 것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잘 먹어야했다. 같이 간 형제들은 오히려 음식 때문에 힘들어했지만 나는 "고스또죠"(맛있다) "무이뚜 고스또죠"(정말 맛있다) 하면서 잘 먹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고 다시 미국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니… 다시 헤어진 그사람과 부딪힐 것이 걱정이 되었다.
선교사님이 계시는 밀림을 벗어나 마나오스로 나와서 마이애미행 비행기를 타려고 하는데.. 전체 팀 중에 나 혼자만 입국을 못하게 되었다. 난 당시 영주권자였는데 영주권을 집에 두고 브라질을 갔던 것이다. 처음엔 좀 당황했다. 나 혼자 다시 선교지로 들어갈 생각을 하니.. 그러다 이내 드는 생각이 뭔가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계신 일이 있는 것 같았다.. 언니 오빠들이 나를 혼자 두고 갈 수 없다고 걱정해 주었고 (그러고 보니 팀 중에 내가 최연소) 시민권 있는 오빠들이 내 보증을 서겠다고도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고 나는 덤덤히 다시 상가브리엘로 들어가는 경비행기를 타겠다고 했다. 그리고 마나오스 공항에서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여기서 너무 은혜 많이 받았는데 하나님께서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시려나봐" 엄마는 주저하지 않고 "아멘" 하셨다. 생각해보면 그때 나 나름 어렸는데 어린 딸래미 혼자 밀림 가는데 아멘하는 울 엄마… 역시 믿음이 좋다.
그때 신기한게 몇 가지 있다.
난 그때 뭐에 씌인 것처럼 영주권을 일부러 집에 두고 갔었다.
한국에 나갈 땐 당연히 들고 나가는걸 브라질을 가면서 혹시 잊어버릴지 모른다고 두고 간게 아무리 생각해도 제정신이 아니다.
또 하나.. 난 그때 배낭이 두 개였는데 마나오스 공항에서 짐을 확인하니 땀에 절은 옷을 잔뜩 넣어둔 배낭이 빠진 것이다. 어차피 중요한 물건은 다른 가방에 있고 그 가방엔 냄새나는 옷밖에 없었기 때문에 아쉽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하루만에 다시 선교지로 들어가 보니… 그 가방에 있던 옷들이 몽땅 빨아져 빨랫줄에 쭉 걸려있는 것이다. 사연인즉 공항에서 내 가방이 다른 짐들 사이에서 빠졌고 그걸 선교사님께서 주워오셔서 세탁기에 돌리신 것이다. 하필 그 많은 짐 중에서 내 가방이.. 그것도 정확하게 빨래 가방이 떨어진 것도 신기하고, 난 당장 갈아입을 옷이 한벌도 없었는데 그 덕분에 옷걱정 없이 무사히 두 주를 버틸 수 있었다.
또 재밌는 일도 많았다.
딱 하루만에 다시 선교지로 들어가는데 내가 선교사님 트럭을 타고 마을로 들어가는 걸 동네 어느 꼬마가 본 것이다. 그 꼬마가 엄마에게 아나를 봤다고 하니 그 엄마는 네가 미쳤구나.. 아나는 미국에 갔는데 어떻게 보냐고..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선교사님 댁에 와서는 그 자리에 있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내가 가르쳐준 찬양과 율동을 동네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연습하고 있는 것도 보았고 선교지에 남아 있는 동안 그곳 주일학교 선생님들에게 우리팀이 했던 VBS(여름성경학교) 프로그램을 전수(?)하고 또 하도 이집저집에서 놀러오라는 초대를 많이 받아서 매일 매일 심방(?)다니고 맛있는 것도 많이 얻어 먹고 낮에는 선교사님 번역도 도와드리고 밤에는 선교사님 아들이 집에 남기고 간 슬램덩크를 읽으며 너무 너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선교사님 내외와 인디오 신학생들과 함께 새벽기도를 드리고 나오면 아마존의 검은강 위로 가득한 구름을 바라보며 저 구름처럼 나를 덮고 임재하시는 성령님을 느꼈다. 아마존으로 다시 돌아가자마자 긴장이 풀렸는지 열병을 앓기도 했는데 그때 나는 내 신음을 들으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다. 밥을 먹으면 토하고 선교사님 폐 끼칠까봐 아픈 내색도 못하고 있는데 그 더위에 오한이 나서 더운물로 샤워했으면 좋겠다 생각하면 샤워기를 고쳐주셨고 도저히 입맛이 없어서 밥을 먹을 수가 없는데 그 아마존에서 죽이 생겼다. 난 하나님께서 나를 먹이고 입히며 돌보시는 것을 그때만큼 확실하게 느꼈던 적이 없다.
그때 난 꽤 심하게 아팠는데 사흘인가 내리 아프니까 선교사님께서 말라리아가 아닌가 걱정이 된다고 주사 맞으러 가자고 하셨다. 난 말라리아도 무섭지만 주사 맞는게 더 무서워서 하루만 더 버텨보겠다고 말씀드렸는데 호전되질 않아 기어이 선교사님 손에 이끌려 약국에 가서 주사를 한방 맞았다. 선교사님께서 주사 맞으러 가는 길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당신은 주를 위해 열번 죽으라고 하면 열번을 죽을텐데.. 하기 싫은 일이 있으면 그 생각을 하신다고.. 나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ㅠ,.ㅜ) 주사를 맞았고.. 엄청 아팠는데.. 신기하게 주사맞고 나니 열도 금방 내리고 밥먹고 토하는 것도 싹 나았다.
떠나기 삼사일 전인가.. 철야예배가 있는 날이었다. 예배 마치고 두 명씩 서로의 기도제목을 놓고 짝기도를 했는데 난 선교사님 사모님과 짝이 되었다. 선교사님 내외분과 같이 지낸 3주 동안 그분들의 삶에 깊은 감동을 받은 터라 사모님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데 도중에 방언 은사를 받게 되었다… 한참 울며 기도하는데.. 사모님께서.. "자기 방언 받았지?"하셨다.. 나도 내가 방언을 하는 것 같아서 얼떨떨하고 놀랬는데 "그..그런 것 같아요." 했다. 그 다음부터 계속 방언 기도가 나오고 이게 내 힘으로 하는게 아닌 게 너무 확실했기 때문에 내 믿음을 또 한번 일으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내가 엄마에게 미리 말했던대로 아마존에 머무는 3주간 하나님은 내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그때 역사하신 하나님이 너무 강렬해서 내가 주를 사랑하고 더욱 주를 사랑하기 위해 달려가는지 모른다.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아서.. 하나님 왜 이렇게 나를 편애하십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사랑을 받아서 내가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할 자가 되어야겠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는지 모른다. 달라스로 돌아와서 예배 때 간증을 했고 사람들은 내가 방언도 받고 너무 재밌는 경험을 많이 한 것을 부러워하였다. 미리 떠난 팀들은 전혀 관광을 못했지만 난 나중에 적도 표시 옆에도 가보고 다른 사람들은 먹지 못한 브라질 요리도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받았던 엄청난 사랑.. 온 동네의 스타가 되는 그런 경험을 무엇에 비긴단 말인가..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고.. 내가 하나를 주면 그들은 열로 갚았다. 난 그때 이미 조금씩 눈치채고 있었다. 선교가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거라는 걸.. 내가 주를 위해 작은 것을 드릴 때 주님은 감히 비교할 수 없는 더 큰 기쁨을 부어 주신다는 걸… 한 영혼 한 민족을 사랑하는 일, 내 힘으로 할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힘도 의지도 주신다는 걸..
…
남자친구와의 이별은 힘들었지만, 내겐 많은 교훈을 주었다.
내가 그 사람을 좀 더 믿어주었더라면..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좀 더 자신감이 있었더라면..
무슨 미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혜롭지 못했던 내 행동 때문에 많이 자책하고 후회했다.
그 후로도 상처를 딛고 서는데는 참 긴 시간이 걸렸다.
2001년은 그렇게..
많이 아팠고 많이 감격했고 많이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