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장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예수님"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어릴 때 여름성경학교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다네~~" 하며 율동하고 노래부르던 기억이 나는데.. 바로 그 대목이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계시던 곳에 이틀이나 더 머무시며 늑장을 부리시다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째에 베다니에 도착하신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나는 진정 원망하지 않았을까? 예수님에 대해 실망하지 않았을까?
생면부지 남의 병도 고쳐주시고 먹을 것을 베풀어 주신 예수님이시다.
하물며 나사로는 그의 사랑하는 친구가 아닌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장 필요했던 순간에 외면하신 예수님..
내가 마리아였다면.. 마르다였다면.. 예수님을 오해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 때 주변에서 예수님의 우시는 모습을 보고 "거 봐라 저가 얼마나 나사로를 사랑하였는가" 하는 사람들이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사람이 나사로는 죽지 않게 못하더냐"고 빈정대던 사람들 틈에서 나는 뭐라고 하였을까..
다시 유대땅에 갔다간 돌 맞을까 두려워 차라리 나사로의 병을 외면하고 싶었던 제자들과 같았을까? 이틀 지나 나사로를 깨우러 가자는 예수님 옆에서 비겁하게 "저가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하며 속으로 ‘나사로가 설마 죽진 않았겠지.. ‘하고 핑계 거리를 찾았던 제자들과 같았을까? 아니면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며 열라 겁나지만 자못 비장한 각오로 앞장 섰던 도마와 같았을까..
너무나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건 속에서..
전에 고민하지 않았던 여러가지 생각이 얽혔다.
나는 예수님을 절대 신뢰할 수 있었을까..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죽는 그 순간에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예수님께선 나사로를 살리심으로써 부활의 표적을 미리 보여 주셨다.
그리고 이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말씀하셨다.
믿음의 기저가 흔들리는 고통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주를 따를 때라야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다.
눈 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나님..
그런 하나님 따위 믿지 않아 하고 울부짖을 것인가..
그분의 완전한 사랑과 계획을 오직 신뢰하며 따라갈 것인가..
하나님이 사랑이신지 아닌지..
그분이 전능하신지 아닌지..
그분이 진리인지 아닌지 검증하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오직 믿을 뿐이다.
어떤 상황과 환경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만을 따르겠다고..
뒤돌아 보지 않겠다고..
이미 확인한 걸 한번 더, 한번만 더 보채며 어린아이 같이 굴지 않겠다고..
푯대를 바라보고 가겠다고..
주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