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September, 2007

오해

Friday, September 28th, 2007

나와 이름이 같고 나이가 같은 간사님이 본부에 계신데..
1년 넘게 해외 지부 사역을 맡으셔서 많은 분들이 헷갈려 하셨다.
그 한나는 누구고 이 한나는 누구야??
대략 본부한나와 달라스한나로 구분되곤 했는데..
여전히 헷갈려하는 분들은 헷갈려하신다.
미주 사역의 특징이 서로 멀리 있다보니
얼굴은 잘 모르고 이름만 보는 경우가 많아서 더 그렇다.

오늘 본부 한나간사님이 결혼하신다는 청접장 이메일을 받았다..

그리고 우려했던대로..
결혼 축하한다는 축하 인사가 내 이메일로 막 들어오고 있다.  ㅋㅋㅋ
이거.. 이거.. 내가 아니라고 공지를 띄울 수도 없고..
더러 오해하는 분이 계실 듯 하다. ^^;;;
이 오해를 풀자면.. 나도 얼른 결혼하는 수 밖에..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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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간사님, 축하드려요~
축복의 통로가 되는 행복한 가정 이루세요 ^___________^

밥의 힘

Friday, September 28th, 2007

며칠 전 배목사님께서 우리 인터콥 간사님들을 집에 초대해 주셨다.  저녁 메뉴는 육개장.

목사님 아파트는 작지만 정갈했다.
난 요즘 이렇게 깔끔한 집들이 눈에 들어 온다.
미국에 좋고 화려한 집이 얼마나 많나..
하지만 그런 집은 관리하기도 골치 아플 것 같고 부담스럽기만 하다.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는 내가 평생 살아 본 집 중에 가장 좋은 집이다.
나는 매일 감사한다. 하나님, 이렇게 좋은 아파트에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럭셔리 인생이다.

집이 큰 건 부럽지 않은데..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고 편안한 분위기는 언제나 부럽다.
내가 정리정돈이 잘 안되는 스타일이라.. 그런 집을 보면..
그렇게 예쁘게 집을 가꾸시는 어머니들의 센스에 감탄할 뿐이다.
목사님은 책도 많으시고, 아직 아이가 어려서 장난감도 많고 충분히 정신없을 수 있는 상황인데
사모님의 정성스런 손길이 닿은 집안 구석구석은 뭐라 설명할 수 없이 단정하고 편안하다.

사모님께서 한땀한땀 작업하신 퀼트 작품이 아기자기한 멋을 내고
결코 화려하지 않지만 사랑이 샘 솟고 쉼을 얻는 그런 집.

저녁 메뉴도 간단했다.  밥, 국(육개장), 그리고 몇가지 나물 반찬..
그런데.. 이 밥은 내가 먹어 본 어떤 밥보다 윤기가 돌고 찰지다.
육개장은 또 어떤가.. 조미료라고는 조금도 들어가지 않은 이 국의 어디서 이렇게 깊은 맛이 우러나는 걸까.. 
한국에서 어느 친지분이 밭에서 재배해서 말려 보내셨다는 호박 나물도 기가 막히다.
게다가 요즘에 집에서 김을 구워먹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모님께서 직접 담근 김치와 직접 구우신 김..
모든 음식이 정성과 사랑이었다.

난 먹을 복이 많아서 좋은 음식, 비싼 음식을 많이 먹어봤지만..
이렇게 한끼 식사에 새 힘이 솟고 사랑을 느끼기는 참 오랫만이었다.
어쩌면 사모님의 음식을 보고 엄마 생각이 많이 나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 음식으로 섬기는게 이런거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요리하는게 이런 거구나..
우리 엄마도 늘 이렇게 섬기셨는데..

내가 선교지에 들어가기 전에 요리를 좀 배워야겠다.
그래서 현지에서 형제 자매들을 섬기며..
사모님처럼 먹으면 힘나는 음식, 사랑이 솟는 음식을 만들어야겠다.
다른 건 몰라도 육개장 만드는 건 꼭 배워야겠다.
과도하게 맵지 않으면서 고기와 야채가 함께 어울려  조화로운 맛을 내는 저 비법을 꼭 배워서 현지인들을 감동시키리!

음식은 사랑이다.
정성이 들어간 한 끼 식사에 외롭고 곤고한 한 영혼이 위로를 얻었다.

좋은 회사를 다니다 보니..

Tuesday, September 18th, 2007

iPhone이 출시되자 마자 테스트할 수 있었고..
내가 쭉~ 쓰게 되길 은근 바랬는데..
꿈은 이루어졌다!!  ㅠ.ㅜ

한글 폰트를 따로 설치하지 않아도 읽는데는 문제가 없지만..
입력까지야.. 사실 아쉽지만 기대도 안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아이폰 판박이 같은 아이폰 터치가 한국에도 출시되며  한글 지원이 이슈가 된 모양이다.
그랬더니 어느 친절한 분께서 이렇게 아이폰 한글 입력기를 만들어 주셨다.

가장 불편한 검색어 입력이 해결됐고..
Google이랑 Naver면  충분!
그리고 이메일도 쓸 수 있다.  ^___________^

글고 천지인 한글 입력 방식도 처음 접하는데
이거 괜찮은뎅~

예랑이

Sunday, September 9th, 2007

내가 완전 예뻐하는 예랑이..
나도 예랑이 따라 손가락 3개로 브이질 ㅋ

어스틴에서 올라오는 길에 Golden Wok 에서..

개척정보 기고

Monday, September 3rd, 2007

코너명: FO 간증

글쓴이: 김한나/2007 이라크 여름 FO 참가자

제목: 기쁨과 소망의 땅 이라크

이라크라는 말을 꺼내는 그 순간 내 마음엔 이미 기쁨과 소망, 위로와 감사, 그리고 가슴 한 구석이 뻐근하고 아릿하기까지한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이라크 FO를 결정할 때부터, 이제 그 땅을 오롯이 품게 되기까지 이것이 나의 의지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인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고, 그분의 위대한 사랑에 동화되어 잃어버린 사람들을 향한 사랑도, 아버지를 향한 사랑도 내 안에 함께 자라는 것을 고백한다.
 
모든 민족을 사랑하시는 아버지, 그리고 어느 한 민족도 외면하거나 버리지 않으시는 아버지..

장기화된 전쟁 이후 극도로 불안정한 국내 상황과 막혀버린 입국의 길, 주변국가와의 긴장과 외세의 개입으로 희생당하는 이라크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 땅이 어떻게 열릴 것인지, 그 민족이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 지 막막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FO를 통해 알게 된 것은 그 땅은 참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돌보시는 땅이며, 하나님을 알기 위해 목마르고 주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땅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처음부터 이라크를 품었던 것은 아니다.  이라크를 위해 오래 기도해왔지만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살면서도 그 땅이 내가 섬길 수 있는 땅, 내가 가야하는 땅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얼마는 두려움 때문이고 얼마는 나의 관심이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 미주에서 이라크 FO팀이 결성된 것을 5월이 다 되어, 그것도 이미 다른 지역에 FO 가기로 정한 후에 듣게 되었다.  미주 FO 담당 간사님으로부터 내가 가려는 곳 대신 이라크를 가라는 권유를 받았을 때, 내게는 그 일이 마치 바울이 본 마게도냐인의 환상처럼 이라크를 향한 부르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기도할 시간을 달라고 부탁드렸고 다음날 이라크 FO를 결정했다.  미국에서 시민권을 갖고 사는 이유가 한국 사람은 못 들어가는 그 땅을 섬기라는 이 때를 위함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는 내 안의 불순한 동기와 자아와 의지를 꺾으셨다.  어쩌면 처음 내 마음엔 하나님의 나라와 잃어버린 영혼보다 아무도 가지 않는 이라크를 간다는 자체에 더 관심이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 없는 일이라고 부인하면서도 내 믿음과 용기를 뽐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라크 FO를 준비하던 중 갑작스런 사고로 사랑하는 부모님을 잃었고 그 일을 통해 세상 기쁨, 세상 소망이 다 끊어지는 심정이 되었다.  마음이 힘들수록 하늘의 소망은 더욱 분명해지고, 부모님께서 사랑하신 교회를 나도 사랑하고 부모님의 희생을 값없이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이라크를 진심으로 품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하나님께서 같은 회사에 다니는 이라크인 동료와 그를 통해 만난 쿠르드 식당 주인, 이라크 NGO 단체 등을 연결시켜 주시며 많은 현지 정보를 얻게 하셨고, 이번 FO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내 안의 모든 두려움과 불안함을 걷어가셨다.  떠나기 일주일 전 일어난 아프간 단기팀 피랍사건을 바라보며 난 또 한번 내 자신이 선교지에 가려는 동기를 재검하였다.  많은 분들이 걱정하고 반대하셨지만 모든 민족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필요하다는 자명한 진리, 이렇게 어려운 상황일 수록 누군가 계속해서 순종하는 믿음을 주께 올려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한편에는 떠나기 전부터 벌써 많은 사람을 연결시켜 주시고 FO에 대한 기대를 부어주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지키시고 새로운 일을 하시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라크로 떠나기 전날 청년부 전도사님 사모님께서 나에게 히브리서 말씀(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히13장 6절)이 적힌 카드를 건네 주셨다.  나는 이 말씀을 받고 한참 울었다.  말씀이 나의 믿음을 확증해 주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과 그들이 하는 일이 두렵지 않았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심을 믿었다.

이번 이라크 FO팀은 터키 동부 도시 디아르바크르에서 육로로 이라크 북부 국경을 통과하여 쿠르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쿠르디스탄 내 3개 주요 도시(두혹, 아르빌, 슬라이마니)에서 사역을 하였다.  이라크 내에서 가장 안전하고 재건이 활발한 지역이었다.  무척 긴장하고 들어간 것이 무색할 정도로 그곳은 안전했고 생각했던 것보다 여유로웠다.  실제로 지난 4년 간의 이라크 전쟁에서 빗겨 있었던 이라크 북부 쿠르드 지역은 과거 사담 후세인과 그의 부인들이 여러 별장을 지을 정도로 아름다운 장소들이 있고, 걸프전 이후 보장받은 자치권과 재건의 노력으로 터키, 이란, 시리아 등지의 쿠르드족의 삶이나, 절대 빈곤한 아프간, 예멘 같은 나라에 비해서는 안정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피상적인 관찰이었는지 깨닫는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믿을 수 없이 친절하고 낯선 동양인들을 반겼던 그들은 우리가 이라크와 그 땅의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자 자신의 곪은 상처들을 내 보였다.  과거 후세인의 학살과 오랜 전쟁의 충격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사람들, 살기 위해 외국으로 도망치다 오히려 죽고 다친 사람들, 무법지대가 되어버린 바그다드에서 도망쳐 온 난민들, 끊임없이 누군가의 도청과 감시를 두려워하는 지식인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도 예수님께 기도하자는 우리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이 너무 가난했다.  무슬림이면서 성경책을 숨겨두고 읽는 할아버지도 만났다.  자신은 종교가 없지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성경 말씀이 좋다고 그 말씀을 벽에 붙인 대학 교수님도 만났다. 

그들은 마치 누군가 예수님을 전하기만 하면 마음이 다 녹아버릴 듯 복음을 기다리는 사람들 같았다.  한국사람을 너무 좋아하지만 한국인들은 그 땅에 들어갈 수가 없고, 반서구 정서가 강한 것을 알고도 신실한 백인 형제들은 벌써 그곳에서 많은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다.  한편 부끄럽고 또 안타까운 것은 학교나 병원, 여성, 어린이 센터 등 구호와 복지에 전념하는 팀이 여럿 있었지만 이라크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할 팀이 거의 없는 현실이었다.  누군가 이 역할을 감당할 사람들이 필요했다.

이번에 이라크에 들어간 팀은 한국 사람이면서도 미국 시민권을 가진 1세와 1.5세들이 대부분이었다.  언젠가는 상황이 바뀌겠지만 아직은 한국팀들이 그 땅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시리아, 터키 등 국경에서 이라크를 위해 기도하고 떠난다는 말을 들었다.  아브라함, 요나, 다니엘을 비롯하여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살았던 이라크 땅, 지금은 전쟁 끝에 피 흘리며 고통받고 있지만 그 땅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기도가 쌓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기도는 절대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미 마음을 열고 기다리는 곤고한 그들을 위해 복음을 전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갈 수 없다면 미주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어날 수 있는데 지금까지 그 땅을 섬기지 못한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나에게 이번 이라크 FO는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들을 사랑하시는지, 그 사랑이 나에게도 전달되는 시간이었다.  이상한 것은 나는 분명 그들을 위해 울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순간 내 안의 아픔과 슬픔도 함께 어루만지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가 어둡고 세상엔 고통과 슬픔이 가득하지만, 그럴수록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소망인 것이 분명하고 그 이름의 능력이 이 땅의 곤고한 영혼들을 구원하고 회복시키실 것을 생각한다.  이라크는 진정 나에게 기쁨과 소망의 땅이었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으로 낙심하지 않고 믿음의 눈으로 이라크의 모든 민족이 주님께 돌아오는 그날을 바라보며 그 땅을 위해 기도하고 섬기겠다고 주님께 고백한다.

기뻐하라 이라크! 기뻐하라 쿠르디스탄!

“와라” 그리고 “조르” (쿠르드어 레슨2)

Saturday, September 1st, 2007

우리가 묵었던 무함마드네 집 막내딸 하나르..

이제 한살인데 얼마나 우량아고 한 성격하는지 모른다.
보라.. 저 눈썹 사이 잡히는 주름을..

난 예랑이도 그렇고 이렇게 어린 나이에 벌써 자기만의 세계를 갖고 있는(?) 아가들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글세 이집에 갔을 때 기어다니는 아가에게 사람들이 "와라" "와라"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쿠르드어로 come here 하는 말이 "와라" 인 것이다.
와라, 하나르(아가 이름), 와라~
그럼 하나르가 온다.

거참..

또 하나는 "zor"
이건 very 라는 뜻인데..
예를 들어 좋다는 바쉬.. 매우 좋다는 조르 바쉬..  이런 식이다.
이말이 또 너무 웃기다.
우리도 zor와 비슷한 말을 강조할 때 쓰지 않던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

아무튼.. 쿠르드어 배우다가 웃겼던 단어 두가지.. 갑자기 생각나서 적어본다.
그럼 이만..
Roj Bash (Good D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