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어디의 부잣집 막내딸로 태어난 울 할머니는 위안부 잡혀가지 않도록 열일곱에 혼인을 하고 스물 두엇에 이남으로 내려오셔서 일가를 개척하셨다.
지역 유지셨던 할머니의 친정 어른들은 사시는 터전을 버리고 월남 할 수 없으니..
너라도 내려가 살라며 배에 이것저것 실어 보내셨는데
도중에 풍랑을 만나 짐을 많이 버리고 겨우 내려 오셨다고 했다.
며칠 먼저 떠났던 이웃의 배는 파산하여 파편이 떠다니는데..
오히려 늦게 출발하여 살았다고 하셨다.
(그때 바다에 빠지지 않고 남은 물건 중에 오강(?)처럼 둥글납작한 도자기가 있는데 우리가 이민 올 때 엄마는 그 와중에 그걸 잊지 않고 챙겨 할머니를 감동시키셨다.)
집안의 막내로 귀염 받고 사신 할머니는..
집 떠나 멀리 학교가는 것도 엄마 보고 싶다고 울고 떼쓰셨다는데..
그랬던 분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키우시며..
한국 전쟁을 몸으로 다겪고.. 생존을 위해.. 자식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억척스러운 삶을 사셨는지..
말씀을 듣다 보면.. 이게 소설도 아니고 대하드라마도 아니고, 그냥 울 할머니 얘기라는 것이 얼마나 당혹스러운지.. 잡히지도 보이지도 않는 그 격동의 시간들과 현재의 고리를 찾기는 얼마나 어색한지..
한국의 근대사는 순도 100%의 농축액 같다.
그리고 내 눈 앞에 계신 이 분이 바로 전설이고 증인이시다…
아빠가 어릴 때 할머니께 그러셨단다.
명절이 되면 친척들 모이고 북적 거리는 다른 친구네 집이 부럽다고..
할머니의 트라우마는 가족이 흩어지는 것이었다.
이남의 유일한 피붙이인 남편과 자식들에 대한 할머니의 집착은 유별났다.
그래서 억척스럽게 돈을 버셨고, 군대 가는 아들들을 따라 다니며 뇌물도 쓰셨다. 최전방은 가지 않도록..
옳고 옳지 않은 것보다.. 할머니에겐 가족을 지키는게 더 소중했다.
집안에서 첫 손주인 내가 태어났을 때..
아빠는 할머니께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가족이 할머니와 아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난 몰랐고, 이해하지 못했다.
외가에는 엄마의 여섯 형제 외에도 촌수를 다 셀 수 없는 많은 친척이 있고, 친가로도 작은아빠, 삼촌, 고모까지 모두 가진 내가 아닌가..
그런 난 늘 집을 떠나고 싶어했다.
난 늘 가족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아빠가 그렇게 자식들을 곁에 두고 싶어 하셨구나.
그래서 아빠는 무리해서 방세칸을 고집하셨구나..
그래서 아빠는 내가 집에서 나갈 때 쓸쓸한 눈을 하셨구나..
난 오늘에서야 아빠의 마음을 더듬어보며 가슴이 먹먹하다.
난 지금 내가 옳은 길을 간다고 믿지만….
이런 날 섭섭해 하시는 할머니를 이해할 수 밖에 없다.
부모님이 계셨다면..
말리지는 않으셨겠지만 많이 걱정하셨으리라..
엄마..
아빠..